연길에서 태여나서 반백을 넘긴 사람치고 뾰족산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루루천년 내려오며 언제 한번 시인의 붓끝에 실려 이름을 날린 적도 없고 풍상고초를 이겨온 리력서를 아름다운 멜로디에 담아 노래 불러준 사람도 없지만 내 마음속에는 마냥 하늘 높이 번쩍 머리를 추켜든 날카롭고 강직한 사나이 존재로 거연히 솟아있다.
사람이 얼굴 생김새와 몸매가 서로 제나름인 것처럼 뾰족산도 역시 천라만상중 한폭의 그림같이 독특한 경관을 갖춰 길손들이 호기심에 끌려 발길을 멈출 때가 많다. 연길시에서 북쪽으로 약30리거리를 상거한 뾰족산은 신창, 석인촌을 거쳐 흘러나온 강물과 황초골안에서 터져나온 시내물이 합친 입구를 파수군처럼 보란 듯이 막아선 산세가 언제봐도 범상치가 않다. 더우기 높이650미터에 달하는 정상에 어느 전설속의 어르신이 일부러 등짐으로 돌비석을 올려놓은 듯 아래에서 문뜩 올리쳐다보면 송곳같이 뾰족한 봉우리가 갑자기 폭우를 몰고오는 먹장구름을 산산히 찢어내동댕이칠 듯한 저돌적인 날카로움이 있다.
외압적인 언사로 막말이 생겨난 배경에 주목이 쏠린다. 그런 시처위에 소인을 자주 퍼포먼스로 등장시키는 최근 인적사항이다. 시련과 좌초와 체험의 의도적 담금질이다. 그럴수록 등뒤에서 들리는 욕지거리에 스릴을 찾을 때가 두간했다. 귀에 거슬린 구설수가 석연한건 그만큼 용납할 그릇이 커진 등비급수이다.
우선 직언에는 정당성이 있다고 믿어줘야 내 속이 덜 불편하다. 창호지 밖에서 간질이 듯 깔깔대는 병아리의 오열을 듣는 청감이라면 어떨가싶다. 무지근하던 숙변을 제거한 배설자의 쾌기가 꾸역꾸역 밀려든다. 난청의 모독패찰을 등뒤에 달고 다니던 날에 대한 청산이다. 허파가 빈 궁근 탁음이 절명을 치를 때 작히나 안도의 숨을 들이그었으랴?! 한즉 후론이란 뱉은 자의 권위이고 수납자는 소화여하로 효력을 결론한다. 총성이 살상을 초래했다면 비판의 정조준은 세균을 죽인 파생음이다. 복수자의 희열은 번열의 압승이다. 그것을 선고한 전령사한테 드리는 비극속의 사은품이 박격이렷다. 얼음장이 짱- 갈라진다. 겨울에 듣는 비난의 줄기찬 괴성이다. 햇봄의 눈석임물이 달려갈 활주로가 열린다. 현수교를 드나들며 산전수전, 남정북전을 치른 총화답다. 로열티를 지불해서라도 사용하고싶은 응분의 소비임에랴...
요즘 들어 저녁마다 술에 절어 들어오고 좀처럼 집에 붙어있지 못하는 남편 때문에 화가 난데다가 련 며칠 딸아이까지 열이 나 뜬눈으로 며칠밤 지새고나니 극도로 민감해진 나는 갑자기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아침부터 다짜고짜 남편한테 걸고 들었다.
"매일 술 마시지 말고 아이한테도 나한테도 좀 신경 써줘요."
"아니, 내가 일 때문이지 뭐, 그러는 당신도 이런저런 모임에 다 다니잖아? 누가 돈 주는 일도 아닌데."
남편은 평소 말투였지만 오늘따라 웬지 비난의 소리로 들렸다. 나는 평소와 달리 억양이 멋대로 올라가고 기관총 쏘듯이 말을 막 내뱉었다.
"그렇다고 내가 막 다녀? 그리고 애는 뭐 내가 혼자 낳았다고 혼자 봐야 하냐고? 좀 아빠 역할 잘함 안되겠어? 그리고 내가 집에서 노는 것도 아니고 똑같이 밖에 나가 일하고 있는데 왜 애 보고 가사까지 내몫인가 말이야. 조금 분담해주면 안 돼?"
소망하던 도시생활이였지만 꿈처럼 버젓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농촌에서 뒹굴면서 투박스레 커온 덕에 매집이 좋아서 그나마 닥쳐오는 천만가지 시련을 용케도 이겨냈다. 민들레 씨앗처럼 뿌려지는 곳을 탓하지도 않고 아무리 으슥진 곳이라도 해빛이 조금이라도 비추면 파란 잎을 피우고 거센 비바람이 불어치면 더 튼튼하게 뿌리를 내렸다.
우리는 물과 같이 세계 각 곳으로 스며들었다. 연해도시는 물론 해외 진출도 서슴없었다.
청도는 이미 조선족의 새로운 집거지가 되였다. 곳곳에 우리말소리가 들려오고 한국인이 청도에 오면 중국가이드가 필요없이 한국말이 통할 정도이다.
보잘것없던 농민이 대형 공장을 경영하는 대표나 음식체인점 사장이 된 경우도 있다. 매년 운동회가 열릴만큼 사회활동도 활발하다. 자체로 예술단을 묶어 자선공연을 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쯤이면20여년 사이에 농촌 사람으로부터 시내 사람으로 화려한 변신을 이룬 셈이다.
숨돌릴사이 없이 팽이처럼 돌아친 삼월이다. 출근하느라 그리고 주말에는 두 아이의 뒤바라지로 눈코뜰새가 없다. 주위 사람들은 아들 딸이 다 있어 세상에 이보다 더 행복한 것이 어디 있는가 라고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조용히 웃군 한다. 힘들다는 대답은 자칫하면 변명이나 응석부림으로 들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입시를 앞둔 아들애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여 일상 생활을 챙겨야 하는 엄마로서 정신상 육체상 쉽지만은 않지만 아들 앞에서는 항상 밝은 모습을 보이려고 애쓴다.
10분간 업간휴식을 타서 애들이 외워 쓴 열독문제를 검사하던 나는 그만 얼굴을 찡그렸다.
“누가 여기다 답안을 쓰랬니?”
저도 모르게 새된 소리가 나갔다. 관우가 검사용 시험지에다 직접 답안을 써넣었던 것이다.
열독문제를 외운 정황을 검사할 때면 나는 늘 물음만 적은 5~6매의 시험지를 준비한다. 그리고 검사 받으러 나온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어 그들이 문제를 보며 자기가 준비해온 필기책에 답안을 쓰게 한다. 그런데 관우가 그 간격이 좁은 대중용 시험지에다 답안을 깨알같이 적어 넣는 바람에 아이구! 하고 저도모르게 비명이 나갔던 것이다.
이때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영걸이와 광덕이가 내 비명소리를 듣고 히죽히죽 웃으며 교탁으로 다가오더니 수정테이프로 관우가 쓴 그 글들을 하나하나 지우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이 유치하면서도 따뜻한 행동에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냥 지우게 하자니 이제 사무실에 돌아가면 얼마든지 컴퓨터에서 뽑아낼수 있는 일에 시간만 랑비하는 거 같았고 지우지 말라고 제지하자니 애들의 선행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았고… 그래서 이 ‘싱거운’ 공정이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줄 수 밖에 없었다
고향에선 어르신들이 까마귀를 보면 나쁜 일이 생기고 까치를 보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셨다.
어린시절의 고향은 공기가 맑고 물도 깨끗했다. 봄이면 산에 들에 나물이며 꽃들이 만발하고 여름이면 강가에 물고기가 수도 없이 많았다. 가을이면 황금물결같은 논밭, 겨울에는 밤하늘에 반짝반짝 별들이 총총히 많았다. 사계절이 분명하고 계절과 상관없이 창공에는 여러가지 새들이 많았다. 까치는 보기 드물었고 까마귀는 특히 자주 보였던 것 같았다.
꼬마친구들 가운데 등교길에 까마귀가 울면 어른들이 시킨대로 침을 세번 뱉는 애들도 있었다.
찰랑거리는 겨울 눈섞임물 소리
청각을 곤두세운 뿌리
잔털까지 뻗고 생명수를 끓어 올려
겨우내 덮힌 각질을 밀어내고
볕을 닮은 등빛으로
눈길 밝히네
길동무 없이 쓸쓸히
축축한 우듬지에
추위를 밀어내고
계절을 건져 올리는 기특함으로
세상천지간의 사랑은
수많은 아픔과 시린 시간들
건너서 이렇게 다가오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