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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근평의 인민을 생각하는 마음

2022-04-11 13:55:26

작은 마을에서 당중앙에 이르기까지, 농촌대대 당지부 서기에서 당의 총서기에 이르기까지 습근평은 시종 마음속에 나라를 품고 인민을 위했다.

인민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시종 인민을 신앙하며 인민을 무한히 열애하고 인민위해 행복을 가져다 주며 인민에 의거하고 인민을 단합하며 인민을 이끌었다... 인민을 생각하는 습근평의 마음은 지극히 깊고 뜨겁다.

[이는 로농민이 할수 있는 행동이다]

2019년 습근평 총서기가 수도 의무식수활동에 참가한 사진과 1989년 당시 녕덕지구 당위서기로 있었던 습근평이 직속기관 간부들을 인솔하여 의무로동에 참가한 조판사진.

2021년 10월 21일, 산동 동영, 황하바다입구.

이곳을 고찰 중인 습근평 총서기는 한 시범밭에 들어가 콩꼬투리 하나를 따서 꼼꼼히 살펴보더니 콩 하나를 입에 넣고는 "콩이 아주 잘 자랐어요"라고 말했다.

옆에 있었던 농업기술 책임자 라수옥은 "이는 로농민이 할수 있는 동작이다"며 놀라움과 동시에 친근감을 느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자", 습근평 손을 떼지 못했다]

이런 마음에는 붉은 유전자가 쌓여 있다.

2021년 6월 25일, 습근평 총서기는 중공중앙 정치국 동지들을 이끌고 북경대학 홍루에 왔다.

전시홀에서 습근평 총서기는 리대소의 명편 《서민의 승리》가 실린 《신청년》 잡지 원본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자"는 수백자에 불과하지만 습근평은 애지중지하며 손에서 떼지 못했다.

[문을 여는 순간, 습근평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2015년 2월 13일, 습근평은 량가하에 돌아가 고향사람들을 찾았다.

2015년 2월 13일, '황토지의 아들'이 돌아왔다.

습근평 총서기의 손을 잡고 있는 오래된 친구, 여전히 그렇게 친절했다. 총서기는 그들의 소명을 일일이 부르며 "그때 나는 량가하촌과 인연을 맺어 오늘 반드시 당신들과 만날수 있다."

40년전, 량가하를 떠나던 날 아침, 정원에 일찍부터 배웅하러 온 사람들로 가득찼다. 모두들 말없이 조용히 습근평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문을 여는 순간 습근평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사심 없이 나를 도와주고 보호해주었다"]

당시 량가하는 한개 대대가 식사량이 많은 30여명의 지식청년들을 받아들어야 했는데 가난에 쪼들려도 그들은 여전히 도시에서 온 지식청년들을 돌봐주었다. 

습근평은 "배가 고프면 마을사람들이 나에게 밥을 지어주었다. 옷이 더러워지면 마을사람들이 빨아주었다. 바지가 해지면 마을사람들이 꿰매주었다"고 했다. 그들은 일찍이 사심없이 나를 도와주고 보호해 주었다. 특히 그들의 순후하고 소박한 품성은 나에게 영향을 주고 나의 마음에 영향을 주었다.

백성들의 선함을 잘 알기에 마음속으로 그들을 근심한다.

[아버지의 이 말을 회억하면서 습근평은 깊은 정이 충만된다]

2021년 9월 14일, 습근평은 중국공산당 수덕지구위원회 옛터를 고찰했다.

2021년 9월, 섬서성 유림에서 고찰중이던 습근평 총서기가 중국공산당 수덕지구위원회 옛 주소를 찾았다.

전시실에서는 한 줄의 글자가 유달리 눈에 띄였다. "엉덩이는 단단하게 인민들과 함께 앉아 있어야 한다."

"단단하게, 이는 산서방언이다. 뜻은 믿음직하게 정정하게 라는 뜻이다." 아버지 습중훈이 했던 고향말을 회억하면서 습근평 총서기는 깊은 정이 충만된다.

[습근평 총서기가 장보러 온 백성들을 데리고 조사를 하다]

1983년, 당시 하북성 정정현 당위 서기로 있던 습근평 (앞줄 가운데)이 림시로 거리에 책상을 차려 놓고 백성들의 의견을 청취하였다.

1980년대, 습근평이 지방 령도 직무에 임명되 정정현 당위원회 서기를 맡았다. 이 젊은 간부의 근무 태도는 신선했다. 

습근평 총서기는 사무실에 앉아 있지 않았다.

당시 간부들의 말에 의하면 습근평은 늘 현위 간부들을 데리고 조사를 나갔는데 "거리에 상을 놓고 장보러 온 백성들을 데리고 조사를 했다." 현위기관 대문도 항상 열려있었고 광주리를 업은 년로 한 농민들은 자주 습근평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습근평 이런 고어들 읊고 체득했다]

이러한 감정은 전통문화에 뿌리박혀 있다.

2021년 3월, 무이산 구곡계반, 습근평 총서기가 주희원에 들어섰다.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하고 사직은 백성을 위해 선다."….정원안의 벽에는 주희의 민본사상 경전론술이 놓여있었다. 습근평 총서기는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응시했다.

[한 공산당원의 형상이 습근평의 마음속에 깊이 아로새겨졌다]

2014년 3월, 습근평은 초유록 동지 기념관을 참관했다.

1966년 2월, 신화사는 장편통신 '현당위서기의 본보기-초유록'을 발표하였다. 정치과 시간에 선생님은 이 글을 읽다가 목이 메였고 습근평과 학생들도 듣다가 눈물을 하염없이 쏟았다.

"내가 농촌에 가거나 대학에 가거나 군대에 가거나 지도사업을 할 때 초유록동지의 이미지는 줄곧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총서기가 말했다.

[총서기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 맛]

2013년 12월 23일, 감숙성 정서원 고퇴촌은 유달리 추웠다.

습근평 총서기는 촌민 마강 집의 낡은 토반집에 들어가 담밑의 물독에서 물 한바가지를 떠보고 짠물맛에 미간을 찌푸렸다.

"당과 정부는 여러분을 배려하고 도울 것입니다. 총서기는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는 좋은 일이 잘 되지 않아 인민에게 교대하지 못할까봐 매우 두렵다."]

18차 당대회 이후, 습근평 총서기는 산을 넘고 물을 건너 14개 집중적이고 대규모 빈곤지역을 돌아다니면서 50여차례 빈곤구제사업에 대해 조사연구하면서 반드시 '진정한 빈곤을 보고'에서 '진정한 빈곤탈출'에 이르기까지 확고한 력사적 책임을 어깨에 짊어졌다.

습근평 총서기는 "마을 사람들이 하루라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나는 하루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며 "좋은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해 결국 인민과 력사에 책임을 지게 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태항현 깊숙한 곳에는 빙판길을 따라 락타만촌의 낮은 진흙집에 들어가 촌민들을 살뜰히 배려하면서 "자신감만 있으면 황토도 금으로 변할수 있다"고 격려했다.

무릉복지에서 로인의 손을 잡고 친절하게 "나는 인민의 심부름꾼"이라고 말했다.

다별산구에서 "로해방구의 인민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인민에 대한 깊은 정을 중요한 약속, 가장 강경한 조치, 가장 큰 투입으로 바꿔 중화대지에서 빈곤을 탈출하는 기세 드높은 투쟁을 전개했다.

[섣달 그믐날, 습근평 총서기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2020년 초 코로나19가 시작됐다. 섣달 그믐날, 습근평 총서기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의료인이 순직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매우 무겁다"고 했고 환자의 병세가 호전되면 기쁘고 흐뭇했다고 한다. 지도조 책임자들에게 "어떤 상황이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전화로 직접 얘기해 달라"고 당부했다. 전염병 예방통제가 가장 위급한 나날에 총서기는 시종 군중들의 안위를 근심했다.

"인민의 생명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총서기의 말의 무게를 느겼다.

[습근평 총서기, '택배원' 칭찬]

2019년 2월 1일, 습근평은 여전히 일하고 있는 '택배원'을 방문했다.

2022년 북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오성홍기가 100여명 일반 중국인들의 손에 전달됐는데 '택배원' 류활도 그중 하나다.

3년전 음력설전야, 택배원 류활과 동료들은 그들을 방문하러 온 습근평 총서기를 만났다.

설날 전날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총서기는 '택배원'은 매우 수고스럽다.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들어가며 명절이며 더 바쁘다. 이들은 부지런한 꿀벌처럼 가장 부지런한 로동자로 모두들의 생활에 편리를 가져다 준다고 말했다.

[총서기 마음속에 기층 제일선 근로자를 담고 있다]

일언일행, 총서기의 마음속에는 기층 제일선 로동자들을 담고 있다.

시공현장에서 습근평은 친절하게 농민공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농민공을 배려하고 관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택시회사에서 기사들과 함께 명절에 택시 잡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함께 토론했다.

...

[총서기의 사진 한장이 무수한 국민들을 감동시켰다]

개혁개방 40주년 경축대회가 북경에서 성대히 거행되였고 습근평 등은 표창받은 사람들에게 박수로 축하를 표했다.

2018년 12월 18일, 개혁개방 40주년 경축대회에서 주석대 앞줄에 앉은 습근평 총서기는 일어나 몸을 돌려 주석대 뒤쪽에 앉아 표창을 받은 개혁개방 걸출한 기여자 대표들에게 박수를 치며 경의를 표했다.

기자의 카메라는 줄곧 사람들의 마음을 잡았던 순간을 고정시켰다. 이는 영웅과 모범에 대한 예찬이며 더우기는 인민대중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20분 동안 한 촌당위서기에게서 현지의 발전상황을 료해했다]

2016년 전국인대회의 심의현장에서 습근평 총서기는 20분을 들여 한 촌당위서기에게 현지의 발전상황을 료해했다. 

"소와 양의 비육기간은 몇 개월" "마을 당위원회는 몇 명" "어떤 곡식을 심는가" "수산물 양식은 어떻게 발전하는가"….총서기가 질문을 반복하자 청해 귀덕현 대사가촌 당위서기 필생충은 차근차근 대답했다.

한차례의 조사연구를 통해 습근평 총서기는 안목을 기층으로 돌렸다. "인민들 앞에서 우리는 영원히 소학생이다. 자각적으로 인민들을 스승으로 모셔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량회, 400여명 대표위원 발언 청취]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전국 량회에서 습근평 총서기는 53차례 대표단 심의토론에 참가하여 약 400명 대표위원들의 발언을 청취하고 모두와 함께 국가대사를 상의하고 지혜를 모았다.

"올바른 길은 어디서 오는가. 군중 속에서 나오라." 인민들의 생각과 기대를 총서기의 마음속에 담아 국가발전의 상부설계에 융합시켰다.

['14차 5개년규획' 건의초안 잘 작성하기 위해 7차 특별좌담회 개최]

2020년 9월 17일-호남 장사 9개 호텔.

습근평 총서기는 특별히 기층 대표들을 초청하여 '14차 5개년 규획'편성에 대한 의견과 건의를 청취하였다.

농촌교사, 농민공, 화물운송기사, 량식재배대농도 있다. 모두들 저마다 한마디씩 말하고 곤란과 근심을 말하며 어려움과 아픈점을 이야기하고 해결 방법을 제기하였다.

"인민대중 속에는 풍부한 지혜와 무한한 창조력이 있다. 현실감 있게 잘 말했다"고 말했다. 습근평 총서기는 관련 부문에 참답게 연구하고 흡수할 것을 요구했다.

[총서기 젊은 자원봉사자들을 칭찬]

2년 전 음력설, 휴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사소옥은 전염병 사태가 나타나자 무한 동호신성 단지의 가장 젊은 자원봉사자로 됐다. 그는 200여개가구 주민을 위해 채소와 약을 구매하고 배달을 하며 심부름을 했다.

2020년 3월 10일, 습근평 총서기는 무한에서 사소옥과 기층 민경, 위생서비스소 의사 등 대표들을 만났다. 사소옥의 보고를 들은 총서기는 "과거에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애교가 많은 세대라고 말했는데 지금 보니 그들은 역병에 대처하는 일선의 주력군이 되였다"고 감개무량해 하였다.

[총서기 마음속, 인민은 무엇보다도 높고 생명은 태산보다 중하다]

아프리카 방문길에 길림 창춘 장생 생물백신 사건에 대해 "끝까지 조사하고 엄숙하게 문책"할 것을 요구했다. 유럽을 방문하러 가는 도중에 강소 폭발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전력을 다해 구조하고 갇힌 사람들을 수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장을 고찰하는 동안 그는 하남의 특대폭우재해를 시시각각으로 관심하였다.

국민의 생명이 위험에 부딪쳤을 때, 배려하며 가장 신속하게 중요한 지시를 내리고 요구를 제기했다.

우리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할 수 있다. 총서기의 마음속에서는 인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생명은 태산보다 무겁다.

[인민대중의 일은 총서기 마음속의 대사이다]

크게는 생명안전으로부터 작게는 땔나무, 쌀, 기름, 소금에 이르기까지 총서기의 마음속에서는 모두 큰일이다.

'화장실 혁명', 쓰레기 분류, 청결 난방, 학생 시력 보호, 양로원 서비스 질 향상, 식품안전 감독관리 강화 ….백성들을 곤혹하게 하는 '작은 골치거리'라도 총서기의 책상머리에 놓고 총서기의 마음속에 새겨두며 하나하나씩 중앙의 중요한 회의 일정에 들어가 번마다 개혁의 관심사로 되여 인민대중의 생활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

"중남해는 시종 인민대중과 직통하고 우리는 시종 인민대중을 마음속에 둬야 한다"습근평 총서기는 말했다.

/흑룡강일보 조선어문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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