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정협 위원 리동호를 만났을 때 그는 학생들과 함께 실험실에서 과제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열심히 배워주는 한편 컴퓨터 모니터의 각종 데이터들을 가리키면서 학생들과 함께 과제를 분석했고 학생들은 각종 데이터들을 도정신해 들여다보면서 열심히 기록했다…
리동호는 "대학교수인 나한테 이것이 바로 일상이다. 수업이 끝난 다음 직책리행에 관한 얘기를 하자."고 웃으면서 말했다.
수업이 끝난 후 리동호는 실험실에서 나왔다. 그가 이끄는 대로 기자는 학교의 학생들이 평소 연구토론을 할 때 사용하는 회의실로 향했다.
2018년, 리동호는 전국정협위원으로 당선됐다.
그는 몇년간 직책을 리행한 경력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는 "처음 회의에 참가하고 처음 제안을 제출했다… 많은 처음이 있었는데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고 말했다. 몇년간 그는 고등교육, 홍색자원을 주목하고 생태보호와 개발, 변강발전을 심층적으로 연구해왔는데 이 모든 일들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최선을 다해 직책을 리행하고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건언헌책했다.
4년여간 직책을 리행한 경력을 언급할 때 리동호는 자신이 제출한 모든 제안들을 속속들이 기억하고 있었다. 매년 전국 량회에 가져간 두터운 제안들은 그가 최선을 다해 직책을 리행한 증명이였다. "전국정협 위원으로 당선된지 4년이 넘었는데 이 기간 나는 총 26개 제안을 제출했고 매년 6~7건의 제안을 제출했다." 그는 말했다. 매년 제안을 제출할 때마다 그는 최선을 다해 전국정협 위원의 책임을 짊어졌는데 전민교육에서부터 향촌진흥, 변경안정발전으로부터 현지 주민들의 자체적 발전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안들은 충분한 조사연구를 거치고 실제와 결부시켰으며 열점에 초점을 두었다고 한다.
몇년이라는 시간이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갔다.
전국정협 위원은 리동호에게 신분의 전환을 가져다줬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무거운 책임과 그 책임을 짊어져야 할 사명감을 안겨주었다. 조사연구를 하기 위해 그는 전성 각지에 심입해 농촌발전을 관심하고 생태보호를 주목했으며 변경관광발전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모든 것들은 이미 습관이 되였다. 그는 좋은 제안을 제출하라면 반드시 최전방으로 가야 한다고 믿었으며 백성들의 생각을 착수점으로 삼고 실제 정황을 돌파구로 삼았다.
리동호 위원은 "작년 나는 항일련군 력사문화연구의 계통성과 전체성을 강화하고 동북항일련군 인물과 동북항일련군 정신내포에 대한 연구를 가일층 풍부히 하며 동북항일련군 력사문화를 시대발전수요 및 당사교육과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동북항일련군 력사문화연구플랫폼 건설과 조직령도를 가일층 강화할 것을 건의했다."고 말했다. 이 건의를 위해 그는 많은 지방을 돌아다녔는데 조사연구 과정에서 각지의 항일련군 력사문화 연구가 모두 진행되고 있었지만 각자 연구하고 시스템이 형성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이런 상황에 비추어 리동호는 오래동안 심사숙고한 후 이 제안을 제출했다. 그는 "나의 건의는 중앙 및 성의 관심을 받았는데 현재 더한층 락착되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그로 하여금 자신감이 배가되게 했고 또 더욱 노력하도록 했다.
사실 이는 리동호가 직책을 리행하는 길에서의 축소판에 불과하지만 또한 그가 계속 민중들을 위해 직책을 리행하는 동력이기도 했다. 그는 전국정협 위원이라는 신분이 생긴 후 자신의 립지(站位)가 더 높아졌고 했다. 예전에는 교육사업자로서 교육과 관련된 내용을 더 많이 관심했다면 전국정협위원이 된 지금에 와서는 사회발전의 각 방면을 심층적으로 료해하면서 시야가 더 넓이지고 사고도 더 깊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의 발전을 위해, 인민의 행복을 위해 힘을 보태고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금후 리동호는 계속 배우면서 립지를 더 높여 국가발전, 동북진흥, 실제적인 민생사에 초점으로 맞춰 보다 많은 정력을 최전방에서의 조사연구에 몰두해 훌륭한 제안을 제출함으로써 국가의 발전을 위해 더 잘 건언헌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민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