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엄마가 부엌에서 저녁밥을 지을 때 나는 소리였다. 도마에 칼 부딪치는 소리, 뽀글뽀글 된장찌개 끓는 소리, 밥솥이 칙칙칙 가쁜 숨을 토해내는 소리. 그 소리가 밖으로 울려퍼지면 애들과 정신없이 뛰놀다가도 금시 부엌까지 들어와서 침을 꼴깍 삼키였다. 쌀이 끓어오르고 부푸는 동안 밥 냄새가 솔솔 퍼지기 시작하면 허기가 배를 가득 부풀게 하였고 그런 저녁이 어린 나를 살찌웠다.
젊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안해가 밥상 차리는 소리였다. 정해진 시간에 어김없이 부엌에서 들려오는 그릇과 그릇 부딪치는 소리, 밥상 차리는 소리. 그 소리가 해뜨는 아침마당에 울려퍼지면 금세 온몸에 힘이 솟구쳤고 그 소리가 어둑어둑해지는 먼 동구밖까지 퍼지면 일터에서 돌아오는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그 소리는 하루를 시작하는 힘의 원천이며 지친 하루의 불안과 긴장을 풀어주는 해독제였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가지 반찬과 뜨거운 국과 김이 모락모락 피여오르는 윤기가 흐르는 하얀 쌀밥을 대할 때면 기분이 무척 좋다. 나는 일부러 입으로 후후 소리를 내가면서 밥을 먹는다. 따뜻한 밥을 챙겨주는 안해의 수고에 대한 감사 표시였다.
나에게 예나 제나 세상에서 가장 반갑고 정겨운 소리는 "빨리 와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다. 먹을 것이 없어서 너무너무 가난했던 시절. 밥은 꿈이였다. 그 밥 냄새에 밥 먹어라 부르는 소리가 얹히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저녁의 힘이 솟아났다. 항상 일터에서 늦게 돌아오신 아버지는 나를 보며 말했다. "야, 밥 안 먹었지? 식기 전에 얼른 이리 와서 밥 같이 먹자." 밥상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밥을 남겼고 그렇게 내가 먹은 그 밥은 달았다.
어린 시절, 내가 가장 많이 건넨 인사말은 "밥 잡수셨어요?"였고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인사말도 "밥 먹었어?"였으며 가까운 친지들이 내게 묻는 문안에도 가장 많은 말이 "너희들 밥은 제대로 먹고 지내냐?"였다. 한사람에게 끼니를 거르지 않는다는 것은 별일 없이 건강하고 무탈하게 지낸다는 뜻으로 통한다. "밥 먹었어?"는 그야말로 기본적이고 총체적으로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말이다. 이 말만큼 친근하고 정겹고 따뜻하며 고마운 인사말이 또 있을까. 여기에 '밥'이 삶과 행복의 바탕을 이룬다는 생각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사는 일 가운데 먹는 것을 해결하는것이 제일 힘들었던 시절에는 한끼 밥 한그릇 장만하는 고달픈 현실을 한순간도 피할수 없었으니 모든 관심과 결정은 결국 밥 한그릇으로 귀착되기도 했다. 그 시절에 배부른 사람 어디 있었겠으랴만 거듭되는 흉년으로 생산대는 빈타작인 해가 많았고 겨울이 지나면 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곤 했다, 그러니 어쩔수없이 자연히 이른 봄부터 나물이나 부지런히 뜯어먹게 되였는데 가장 힘들 때가 오뉴월이였다. 그 때 상지 모아산에 살던 우리 집에서는 당장 입에 풀칠할것이 없어서 아성사탕공장에 가서 사탕무우찌꺼기를 사다가 쪄먹기도 했는데 그게 어디 사람이 먹을 음식이던가? 못 먹어서 생긴 부황(浮黃)으로 식구들은 얼굴이 붓고 누렇게 떴다. 그런 것을 먹고 겨우 서너살 된 남동생은 개구리처럼 배가 통통 부어오르기도 했다. 그 시절 잡곡밥이나마 배불리 먹는 것이 평민들의 가장 큰 꿈이였다. 하기에 그 시절엔 꾹꾹 눌러 담은 새하얀 쌀밥이 어쩌면 부의 상징이였고 행복이란 어쩌면 밥 한그릇만으로도 충분한것이였는지 모른다.
어려서부터 따뜻한 밥 한그릇의 소중함을 깨달았기때문이라 할까. 나는 상지 모아산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교통이 좋고 꽤나 번화한 모아산진을 떠나 저 멀리 기차도 안 통하고 뻐스마저 하루에 두번밖에 안다니는 연수 중화진시골로 어머니를 모시고 이사를 갔다. 결국 밥 한그릇 때문이였다. 전해 여름방학 때 어머니와 함께 그곳에 사는 큰 형님네 집에 놀러갔던 나는 물고기에 흰 쌀밥을 실컷 먹었다. 해마다 흉년이 드는 모아산과는 달리 해마다 풍년이 들고 물고기가 흔한 중화진은 그 때 내 인상에 그야말로 '어미지향'이였던 것이다.
밥이야기가 나오니 밥을 충분히 먹지 못했던 과거의 기억에도 유달리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는 것이 있다. 풋나물죽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데 늘 남아도는 밥이 있었다. "더 먹어라, 많이 먹어라, 나는 배 안 고프다"라고 하시며 남기던 어머니의 밥이였다. 가뜩이나 부족한 식량에 그나마 일부는 아버지의 병 치료비며 큰형님의 대학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시장으로 이고 나가 팔아야 했으니 남은 곡식으로 식구들의 배를 채우기에는 너무나 부족하여 하루에 한끼나 두끼는 죽을 먹었다.그런데 식사를 할 때마다 어머니는 밥을 반그릇씩 남겼다. "아까 정제(부엌간)서 군입질 했더니 배가 안고프구나"라고 하시면서 밥을 남기셨는데 지금 생각해도 용케 어린 우리 형제들은 입맛만 다실뿐 누구도 그 밥을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건 꼭 어머니가 드셔야 하는것이라고… 랭수로 절반 배를 채우고 힘든 봄날의 논밭일을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날마다 삼시 세끼를 먹어야 하는 밥이지만 나에게 밥의 의미는 각별하다. 밥이 없으면 나는 하루동안 힘없이 앉아있어야만 한다. 밥심으로 일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한참 일할 때는 그것을 절감할 때도 있다. 한끼 식사는 한나절 일할수 있는 힘이 되여준다. 밥은 일할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움직이고 생각하고 래일을 설계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해준다. 일상생활을 이어나가게 하는것도, 또 래일을 꿈꾸게 하는것도 다 밥의 힘이다.
시골에 있을 때 10여년 책임포전을 다루었다. 한여름 농사일은 입에서 단내가 난다. 땅에선 이글이글 뜨거운 기운이 솟는다. 온몸에선 땀이 비오듯 한다. 배 속에선 연신 꼬르륵 소리가 난다. 점점 배가 등가죽에 붙는 느낌이다. 자신도 모르게 허리가 구부러진다. 이 때 먼 곳 논두렁을 타고 점심밥을 머리에 이고 오는 안해가 보인다. 일손이 빨라진다. 손에 힘이 들어간다. 들밥 반찬은 소박하다. 콩나물무침, 마늘쫑 무침, 더덕 도라지무침, 깻잎, 청국장찌개 등이다. 거의 '풀'이다. 그래도 그것을 이밥과 함께 넘기면 꿀맛이다.
한국에서 나는 회사에 다니는데 잔업이 없으면 6시에 퇴근한다. 한겨울 차가운 바람 불어치는 퇴근길에 더디 오는 버스를 기다리거나 좁고 어둡고 긴 골목길을 걸을 때 희고 둥근 한그릇 밥을 생각한다. 꾸룩꾸룩 소리나는 배를 부드럽게 만져줄 밥, 춥고 음침한 배안을 따뜻하게 데워줄 밥, 하얀 사기 그릇에 하얀 김 몰몰 나는 하얀 쌀밥을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서 세상에 밥만큼 맛있는 것이 없다. 밥은 평생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밥은 나의 인생이며 즐거움이다.
지금 나는 나즈막히 너머가는 어둑저녁을 창밖으로 내다 보며 밥 한그릇에 담긴 의미를 다시 한번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