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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한겨울 난로의 따뜻했던 기억- 리은실

2022-01-27 15:29:33

어려서 다녔던 작은 진의 공장마을 소학교는 그 시절 시골학교들이 대개 그렇 듯이 겨울이면 교실난방은 난로로 해결했다. 11월이 다가오면 학교에서는 학생들로부터 난로불을 지필 싸리나무를 두단씩 거두었다.

학부모들이 저마다 싸리나무를 실어오면 담임선생님이 우리 조무래기들을 거느리고 싸리나무를 때기 좋게 짤막하게 꺾어서 쌓아두었다. 거쿨진 싸리나무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작은 손으로 무척 애먹었던 기억이 많이 난다.

겨우내 때야 할 석탄을 실어오면 각 반급에서 아이들이 총동원되여 작은 소래나 바게쯔에 석탄을 담아 교실로 퍼들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어린 것들이 자기 손으로 겨울 땔감 준비를 하는 장면은 생각만으로도 대견하고 한편 비장미까지 있어보인다.

난로불은 그날 맡은 당번이 피우기로 되여있었다. 1, 2학년때까지는 부모님들이 와서 피워주고 그 이후로는 혼자서 피우는 애들이 많았다. 2학년까지 내 난로불을 피워주던 작은오빠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시내에 있는 학교로 가자 3학년부터는 나도 혼자서 난로불을 피워야 했다.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이는 것을 미리 집에서 련습했지만 정작 불을 지피자니 왜 그리 손이 말을 안듣던지. 겨우 성냥을 그어 유지에 불을 붙이려니 그것도 생각대로 잘 되여 주지 않았다. 어찌어찌 겨우 엉성하게 놓은 싸리나무에 불을 붙이면 탁탁 불꽃이 튀며 활활 타올랐다. 이 정도로 불길이 좋으니 우에 석탄을 올려도 되겠다싶어 미리 적당하게 깨여 놓은 석탄덩이를 올려놓으면 금방 전까지 활활 타오르던 불들이 왜 그렇게 쉽게 사그라들던지, 아이들은 하나 둘 교실로 들어오고 나는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물을 끼얹어 불을 완전히 죽이고는 석탄과 싸리나무를 다 꺼내 다시 불을 붙이기를 몇 번, 그러다 먼저 도착한 남자애들이 도와서 불을 지펴 줄 때도 많았다.

어떤 날은 앞머리와 눈섭을 홀랑 태우기도 했다. 조급한 마음에 얼굴을 바싹 들이밀고 불을 붙이다 사정없이 앞으로 내뿜는 불길에 미처 반응을 못해 생긴 참사였다.

난로불을 피우는 당번은 그날 난로불이 죽지 않도록 쉬는 시간마다 살펴봐야 하는 임무도 있었다. 웬일이었던지 내가 당번인 날은 점심 때가 될 무렵이면 불이 꺼질 때가 많았다. 너무 애가 타서 몇번은 울었던적도 있다.

난로는 공평하게 공간 구석구석에 열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난로곁에 앉은 아이는 너무 더워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채로 부채질을 하는가 하면 난로와 멀리 떨어진 창문옆에 앉은 아이는 시린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의 도시락만큼은 공평하게 따뜻하게 데워주려고 4교시 되면 애들의 도시락을 난로우에 놓아 주었다. 겨울이면 집이 먼 아이들이 다들 도시락을 싸오다보니 그 많은 도시락을 난로우에 다 얹지 못해 덧놓을 때도 있었다.

부지런한 당번이 난로불을 책임진 날은 불길이 너무 세서 밑에 놓은 양은도시락 속의 밥은 누룽지가 되기가 일쑤였다. 감자볶음, 김치볶음, 장아찌볶음 갖가지 반찬들이 열을 받아 온 교실에 그 향기가 풍기고 딱 촐촐해지기 시작한 4교시에 그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점심시간이 너무 기다려졌다.

유난히 추운 날은 집이 학교에서 그닥 멀지 않은 나도 도시락을 쌌다. 친구들이랑 점심에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는 일은 썩 재미난 일이여서 엄마를 졸라댔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되여 급한 마음에 난로로 달려가 도시락을 내리우다 너무 뜨거워 그만 그 자리에 도시락을 떨군적이 있었다.

헐겁게 씌워진 양은도시락 뚜껑은 바로 열려버렸고 속 내용물들이 파편처럼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대형참사였다.

비자루로 쓸어담고 하는수 없이 집에 가야겠다고 갈 채비를 할 무렵, 뒤자리 친구가 자기가 오늘 밥을 많이 싸왔으니 같이 먹잔다. 바깥은 그날따라 유난히 바람이 세차 집이 너무 멀게 느껴져 그대로 앉아버렸다. 그리고는 친구와 나란히 앉아 그 밥을 같이 먹었다.

같은 감자볶음도 우리 엄마랑 친구 엄마는 이렇게 다르게 할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싸오는 도시락반찬은 계란부침, 감자볶음, 김치볶음 등 몇가지에서 더 새로운게 없었다. 너나없이 비슷한 규격의 양은도시락에 비슷비슷한 살림살이 일부를 담아와 서로 잘난척할것도 기죽을것도 없이 우리는 따뜻한 한끼를 둘러앉아 즐겁게 먹었다.

추운 겨울 학생들에게 따뜻함을 제공하고, 밥도 덥혀주는 고마운 난로가 가끔은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호주머니에 하얗고 이쁜 사슴이 그려진 하늘색 등산복을 새로 사입고 학교 간 날이였다. 그날 발걸음은 얼마나 가벼웠던지. 그저 딱 한번 슬쩍 난로연통을 스쳐지났는데 뭔가 지직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탄 냄새가 나는 듯했고 놀란 아이들의 눈망울이 나를 향하고있었다. 얼른 벗어보았더니 등산복은 이미 적지 않은 면적으로 겉면이 다 타버렸고 흰 솜들이 너덜너덜 나와있었다.

아, 아까운 내 등산복, 엄마가 알면 꾸지람하실거야 하는 생각들이 차례로 떠올랐고 그날 오전은 무슨 정신으로 보냈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엎드려서 한참 쿨쩍이다 눈물을 닦고 강의를 좀 듣다가는 또 타버린 등산복 생각이 나서 엎드려 울고 그렇게 울다 말다 반복하기를 몇번, 점심시간이 되였지만 집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이 옷을 입고 어떻게 가? 다시 또 울음이 터지려 했다. 아이들이 삼삼오오 몰려와서 한 두마디씩 위안을 하고 배가 고파오는 사이 점심시간은 가고있었다.

그때 교실문이 열리더니 작은오빠가 나타났다. 점심시간이 다 가도록 내가 돌아오지 않자 엄마가 앞집 경숙이에게 자초지종을 물었고 경숙이한테서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도시락을 보내온것이었다. 도시락을 건네주며 오빠는 엄마가 욕 안할테니 저녁에 일찍 오라더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날 먹은 계란부침은 꿀맛이였다.

그 뒤로도 두어번 난로에 옷이 스쳐 쪼그라든적이 있다.

그 이후로 엄마는 나에게 더는 그런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호된 꾸지람을 몇번 당했었다.

얼마전 고구마도 삶아 먹고 난방도 된다는 전기난로를 인터넷에서 보고 맘이 동해서 구매하려고 했던적이 있다. 전기난로지만 외형이 어린 시절 교실에서 쓰던 난로와 너무 닮아 불현듯 향수를 자극했던 것이다. 실용성을 꼼꼼히 따져보니 별로 크게 쓸모는 있을것 같지 않아 강림하려던 지름신을 애써 쫓아버렸다. 오늘 또 그 난로 생각이 간절하다.

앞머리며 눈섭 그을려가며 몇번의 패배를 맛보아야만 타올랐던 그 난로, 그런 수고의 대가를 치러야만 따뜻함을 주던 난로와 비기자면 멋대가리 없지만 외형이 닮았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 전기난로에 맘을 빼앗겨버렸다.

물건은 쓸모로만 존재하나? 전기난로 하나 사놓을 생각이다. 그우에 해바라기, 호박씨 올려두고 그 옆에 아들애랑 남편이랑 모여아 도란도란 옛이야기하는 겨울밤 한번 만들어보고싶다는 야무진 욕심으로...

새삼 추억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 겨울의 조바심 태우는 난로불 지피기가 없었으면, 그렇게 어렵게 피워올렸던 난로불의 추억이 없었다면, 옷 태워먹고 울던 날 도시락 들고 나타났던 우리 작은오빠의 추억이 없었으면 이 겨울은 더 많이 추웠을것이다.

래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누구도 예측할수 없다. 미래라는 연줄이 없는 연 같은 려행을 하면서도 날려가지 않고, 자칫 불안한 여기 오늘에 발 붙이고 살수 있는것은 어쩌면 이런 추억들이 있어서 가능한게 아닐가 생각한다.

이제 코구멍 새카맣게 그을리며 난로불 피울 일도 없는 내 아이에게, 난로에 덥혀먹는 도시락의 맛은 알수도 없는 내 아이에게 색다른 추억을 만들어주고싶다.

그것이 설령 멋대가리 없는 전기난로라 하더라도 따뜻한 추억이 될만한것을 선물하고싶다. 헛된 노력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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