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어낼 수 없는 빛바랜 볕
마르지 않는 어깨의 눈(雪)물
감촉을 잃어버린 당신의 세상
한때는 거위의 꿈이였으나
지금은 벗어놓은 세월이다
피대를 아직 빳빳이 세운채로
벗겨진
당신의 또 한겹 껍질
나의 시간은 태엽을 감고
먼 것과 가까운 것
어느 한 지점에서
우린 서로에게 점으로 겹치겠지
꿰뚫고 지나간 화살이 부러져 있다
작은 물결마냥 일렁이는
기억의 장면들
불꽃 속에서 파닥이던 나비의 날개는
모든 걸 삼키는 불의 날개 되고
지워진 메모지에서는 심장박동이
간간히 들려온다
사랑은 어리석은 이를 더 어리석게 만들 뿐
새는 나는 법보다 뛰는 법을 먼저 배웠고
뒤늦게 날아오른 너의 하늘이 너무 높아
다시 걷기로 했다
깨끗이 두고 온 어제의 끝에서
나의 시간은 자정마다 태엽을 감는다
내가 당도할 아침은
우리의 밖일가 안일가
멈추길 두려워하는 태엽은
감긴 채 감기고 또 감기고
의미
인생이란 두글자가 두려워진 건
이방인이란 세글자를 배우고부터였다
깨여나면 늘 어디서부터 꿈일가 궁금하다
꽃게는 한번 똑바로 걷기 위해
평생을 걷지만
빈껍데기 벗고 나서야 앞으로 걷는다
발바닥은 가야 할 곳만 짚고
두 손은 빈손일 때
마주 보기보다 각자 아래로 향해 있다
각각 오면으로 뻗은 리정표 속에서
삶은 자주 자신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인생은 결국 이름 세글자로 살아내는 일인데
이름의 의미는 오늘도 바뀌었다
기저귀
대치하고 있던 딸애를 잡다 말고
기저귀 던지기를 한다
너에게 가고
다시 나에게 오는
한껏 얇은 삶의 앞과 뒤
어떤 힘의 보조(辅助) 껍질
저 표정으로 도망가게 될가
꼼짝 않고 누워 눈감고 울게 될가
그 무엇의 무엇을 생각하다
결국 달려들어 엄마 나쁘다는
딸애의 손에서 그걸 뺏아낸다
내 삶이 무력해져
감각의 배설물마저 막을 수 없을 때
기저기보다 더 얇고 투명해질 껍질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들
*밀렌 쿤테라의 소설‘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인용
변두리의 희망
표류하는 것은 변두리로 모인다
늘 고정된 핵심(核心)의 주위로
평범한 일상은 살기 위해 헤염친다
끊어내면 끊어낼수록
둥글어지는 변두리
우주에 충만한 저 둥근 빛들
팔 다리 없이 분주한 환성이여
수시로 변주하는 빛의 음표들은
각기 어떤 변두리에서 태여났을가
너무 자세히 보지 마라
세상에 변두리 아닌 것이 없고
좀 더 자세히 보라
세상에 변두리 뿐인 것이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