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호의 따웅소리
2022년 임인년(壬寅年)은 산중호걸이면서 산중대왕인 호랑이해이다.
호랑이중에서도 검은 호랑이라고 하는데 백호면 어떻고 흑호면 어떠랴. 다 같은 호랑이 족속이 아닌가? 이마에 임금 왕(王)자를 새기고 위풍과 용맹과 지혜를 지녔다면 그것만으로도 호랑이가 되기에 족한 것이다.
호랑이해라고 하니 분명 가까운 곳에서 호랑이 내음이 풍겨온다.
그렇지, 저기에 있구나. 저기 새녘의 높은 산마루에 날카로운 발톱을 박고 밝아오는 계명산천을 지켜보고 있구나!
드디여 터뜨리는 따웅소리! 천하를 향하여 내가 왔노라고 포효한다. 말 그대로 포효강호(咆哮强虎)이다.
흑호의 따웅소리는 지축을 흔드는 우뢰소리가 되여 천지간에 메아리치고 화등잔같은 두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불덩이는 무적의 번개가 되여 어둠을 불사른다. 한마리 호랑이의 위무로움이 떨치는 뢰성벽력에 임인년의 새 아침이 열리고 있다.
호랑이해인데 우리도 호랑이의 위무로움을 따라배워 호랑이의 위용을 떨쳐야 하겠다. 초요사회 부민강국의 길에서, 록색환경 생태보호의 길에서, 홍색문화 홍색맥락의 길에서 날파람 일구며 따웅소리를 낸다면 우리의 위대한 강산은 또 한해의 눈부신 봉우리로 날아오를 것이다.
나래 돋힌 호랑이여, 우리 함께 날아보자, 가없이 눈부신 래일로!
설날에 피는 꽃
제야의 종소리가 정월 초하루의 대문을 열었다. '설날'이라는 노래 속의 까치설이 지나가고 우리 설이 온 것이다.
일명 춘절이라고 하는 음력설은 우리 민족의 년중 4대 명절중에서 제일 크고 제일 높이 모시는 명절이다. 이렇게 지체가 높은 명절인만큼 이런 날에 피는 꽃들은 영춘의 상서로움을 빚어올리기 마련이다.
대체로 음력설은 립춘과 거의 맞물리는데 서둘러 봄맞이를 나온 게발선인장이 핑크빛 꽃망울을 터치면서 집안에 붉은 기운을 퍼뜨린다. 발톱 끝에 선홍색의 페디큐어를 바르고 '불타는 사랑'을 속삭이는 게발꽃을 시샘하듯 호접란이며 장수화도 서로의 꽃망울을 터뜨리기에 분망하다.
하지만 이런 꽃들이 흐드러지게 핀다고 하여 우리의 설이 스스로 행복해지는 게 아니다. 우리의 설이 멋스러운 건 마을마다 집집마다 우리 민족의 례의범절이 다듬어낸 세배의 꽃과 덕담의 꽃이 피여나기 때문이다. 설빔을 곱게 차려입은 귀여운 아이들이 웃어른들께 올리는 세배의 꽃과 서로 간에 건강과 행복과 만사대길을 기원하는 덕담의 꽃은 얼마나 아름답고 향기로운가! 이는 유독 우리에게만 있는 전통과 풍속의 꽃이거늘.
바로 사람내음이 물씬 풍기는 이러한 인정의 꽃이 있기에 우리의 설은 진정 행복의 웃음꽃이 만발하는 설다운 설로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의 나무
사랑의 나무! 얼마나 사랑스럽고 감미로운 이름인가!
참된 사람들이 가꾸는 사랑의 나무는 청복을 누리는 사랑의 참꽃을 피워 그 향기를 만방에 풍기고 있다. 그런 가정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부부 쌍방의 성품이 어질고 마음이 너그럽고 의리가 강하고 불화를 다스리는 지성이 있으며 서로 간의 두터운 믿음이 있다. 그리하여 그들이 가꾸는 사랑의 나무는 해와 달과 별이 있고 꽃이 피고 새가 깃드는 아늑한 생명의 푸른 가지를 펼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인간이 심은 사랑의 나무가 적지 않게 벌레가 먹고 병들어 신음한다는 사실이다. 사랑의 나무 한그루가 사나운 비바람에 무참히 쓰러진다면 그 슬픈 이야기는 곧 인간비극이 될 것이다.
어찌 보면 인생이란 한그루 사랑의 나무를 키우기 위한 곡절 많은 드라마가 아니겠는가.
사랑의 나무! 그것은 심기만 하면 저절로 우썩우썩 자라는 나무가 아니다. 그것은 또한 혼자서 키울 수 있는 나무가 아니다. 그것은 마치 뿌리가 서로 다른 두 나무가 하나로 엉키여 사이좋게 살아가는 것처럼 부부라는 남녀 두 사람이 한마음이 되여 두 손을 맞잡고 알뜰살뜰 키워야만 아름드리로 푸르게 자라나는 령육의 나무이다.
하늘과 밥
하늘이란 우리의 머리 우에 아득히 펼쳐진 지고무상의 공간을 이르는 낱말로서 인간의 언어생활 속에 들어와 여러가지 이미지를 낳았다. 그중의 하나로 '남자는 하늘, 녀자는 땅'이라는 말이 있는데 녀자 앞에서 구겨진 자존심을 살리느라고 남자들이 내놓는 이 방패는 음양조화의 심오한 뜻까지 겸하여 사용도가 꽤나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보다 의미가 더욱 심장한 것이 있으니 한고조 류방의 책사로 이름난 역이기의 일언 즉 "왕자는 백성을 하늘로 알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안다"이다. 말인즉 밥이 곧 하늘이라는 말이다.
밥을 하늘이라고 함은 괜한 말씀이 아니다. 제왕장상을 망라하여 밥이 없으면 살 수가 없으니 밥의 가치가 하늘만큼 높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3년 자연재해와 같은 기아년을 살아본 사람은 이 말의 지당함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 오죽하면 그 세월엔 길가에 나뒹구는 말똥까지 밥으로 보였겠는가.
밥이란 해빛과 공기와 물과 흙처럼 하늘이 인류에게 하사한 선물이다. 이 선물을 떠나 인간은 목숨과 인심과 소통을 운운할 수 없다.
그런즉 밥을 괄시하거나 무시하지 말아야 하겠다. 밥을 노엽히는 것은 하늘을 노엽히는 일임을 알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