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의 매일 뭐든지 베끼고 쓴다. 마음이 한가롭거나 기쁨이 벅차오를 때 그리고 기분이 울적하거나 화가 치밀 때도 노트를 펼쳐 글을 베끼거나 글을 쓴다.
그렇게 베끼고 쓰노라면 헝클어졌던 머리도 맑아지고 불같은 분노도 어느새 누그러지며 마음은 고요한 평정을 되찾는다.
기분이 좋거나 즐거운 일이 있을 때면 천천히 커피를 마시듯 또박또박 한글자 한글자 정성들여 베낀다. 슬프거나 힘들 때도 그런 일들을 쭉 적어보며 자신을 다독이고 위안한다. 그렇게 내 몸과 마음은 어느덧 홀가분해져 이튿날이면 가슴을 쭉 펴고 새 아침을 맞이한다.
글을 베끼고 쓰다보면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볼수 있게 된다. 베껴 쓴 글 속에는 무궁무진한 생각과 사상과 철학이 담겨져 있어 나를 갈고 닦고 승화시킨다.
그렇게 베끼고 쓴다. 조용히 앉아 베끼고 쓰노라면 나는 마치 수행자가 되여 먼 길을 떠나는 것만 같다. 그렇게 베끼고 쓰며 지나온 세월 내 마음은 한결 너그럽고 따뜻해진 것 같다. 그렇게 베끼고 쓰는 동안 내 마음도 내가 베끼고 쓴 글만큼 깊어지고 넓어진 것 같다.
나에게는 노트와 수첩이 많다. 로자의‘도덕경’과 공자의‘론어’, 니체의 일부 저작을 비롯해 적잖은 경전들은 책 한권을 몽땅 베끼기도 하고 의미심장한 구절을 골라 짧은 소감과 함께 적어놓기도 했다. 길을 떠날 때면 나는 으레 가방에 작은 수첩 하나 챙겨넣는다. 길을 가다 좋은 글귀를 발견하거나 좋은 생각이 떠오를 때 수첩에 적어놓기 위해서다.
그런 노트와 수첩, 원고지에다 하루에 한 줄 쓸 때도 있고 서너장씩 쓸 때도 있다. 가끔 한글자도 쓰지 못할 때도 있는데 그런 때면 이튿날에 보충해 쓰기도 한다. 그리고 여러날 모인 것을 한꺼번에 쓸 때도 있다.
노트와 수첩들은 색갈이나 크기가 다양하지만 하는 일은 별반 다르지 않다. 초록색은 기분을 한결 좋게 만들어 일기를 적어놓고 검은색은 정중하게 경전이나 명작의 내용을 베껴쓰며 갈색은 랑만적이여서 내가 좋아하는 시를 적어놓기도 한다. 또 손바닥만한 수첩에는 짧은 글이나 짤막한 구절들이 적혀있다. 그리고 원고지에는 시, 수필, 독후감 등 초고를 쓰기도 한다. 그렇게 거의 매일 베끼고 쓰면서 그것은 어느덧 내가 매일 해야 할 하나의 일과가 되여 나의 책임감과 끈질김을 키워주었다. 매사 누가 좋다 나쁘다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아도 나 스스로 거뜬하게 해치울 수 있는 자신감이 차넘치게 만든 것도 같다.
노트에 사락사락 써내려가는 나의 글씨도 점점 예쁘고 단정해진 것 같다. 마구 갈겨 쓰면 나도 그렇게 추한 모습으로 변하는 것 같아보였다. 예쁘고 단정한 내 글씨처럼 나의 심신도 나날이 그런 모습으로 되길 바라며 베끼고 쓴다.
베끼고 쓰는 일이 날로 즐겁기만 하다. 하루하루 자신을 반성하며 나는 열심히 쓴다. 열심히 쓰다보면 내 령혼이 맑고 청정해짐을 느낀다. 홀로 책상앞에 조용히 앉아 쓰다보면 내 마음의 부족함도 보이고 내가 가야할 길도 보인다.
그렇게 베끼고 쓴다. 내심의 부족함을 지우고 가야할 길 멀리 가기 위해 쓰고 또 쓴다. 하나 또 하나의 노트가 글로 채워질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더 느끼게 되고 자신의 한계가 무엇인지도 알게 만든다. 그래도 결코 멈출 수 없는 이 고행 아닌 고행, 그렇게 나는 마냥 높아지는 내 정신의 산마루를 향해 즐겁게 톺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