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전만 해도 고래희는 남의 일처럼 여겨왔었다. 인젠 결코 남의 일이 아닌 제 발등에 떨어진 불로 되여버렸다. 엎지른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듯이 이 발등의 불은 도저이 꺼버릴 수 없다. 꽃잎 흩날리는 강변을 술에 취해 걸으며 한탄했던 두보의 탄식이 진짜 남의 일 아니다. 어느덧 한해를 보내고 고희를 맞게 된다. 그래서인지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 한구석엔 아쉬움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뒤를 돌아보면 먹고 싸고 잔 것 외에 해놓은 일의 흔적이 어떤 것인지 잘 알리지 않는다. 해놓은 일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해놓은 일이 너무 적어서인가? 분명 두주먹 움켜잡고 달려왔건만 뒤돌아보면 해놓은 것 보이지 않는 건 왜서인가? 인생이란 본래부터 이런 것인가? 이런 의문에 해답을 줄 수 없는 나다.
사실 인간칠십 고래희라는 구절은 뜯어 고칠 필요가 있다. 옛날로 말하면 합당한 구절이였건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은100세 시대라 한다. 여기엔 얼마간 과장된 인간의 욕망이 담겨있기는 하지만 옛날에 비해 고령화 시대로 들어선 것만은 사실이다. 옛날의 환갑로인들이 환갑상을 받을 땐 분명 깊고 굵은 얼굴의 주름이며 세파에 부대낀 흔적이 력력하여 름름한 로인다운 모습이였건만 지금의 환갑생들은 주름 하나 없고 매끈하고 말쑥하여 오히려 애들티가 다분하다. 그래서인지 환갑 나이가 되여도 환갑생일 쇨 궁리를 아예 하는 것 같지도 않다. 로령화 시대건 어쨌건 칠십년을 생존했다는 것 자체가 쉬운 것이 아니다. 알다싶이 인간은 자기에게 차례진 생존의 권리를 충분히 향수하지 못하고 중도반단, 요절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에 반하여 고래희까지 생존한다는 것이 축복받아야 할 일이 아닐가 싶다. 가혹한 세월의 험난한 파도를 헤가르고 고래희까지 꾸준히 헤염쳐온 우리들이다. 우리들이라는 이 외연속엔 분명 당신도 그리고 나도 포함되여 있는 것인가? 억세고 장하구나, 우리들아, 우리라는 이 외연속에서 떨어져나가지 말고 머나먼 장래에까지도 포함되여 있도록 힘쓰자.
오늘은 금년의 마지막 날이고 어제의 래일이였건만 이제 몇시간만 지나면 오늘은 래일의 어제로 되여 무정한 시간 속에 파묻혀 자취를 감추어버릴 것이다. 시계 바늘을 동여매도 쓸모 없다. 무정한 시간은 아무런 미련도 없이 세월을 파멸에로 내몬다. 삼백예순다섯장의 일력장은 이제 한장만 외로이 남아 오늘을 잃지 않으려는듯 집요하게 붙어있다. 이 마지막 일력장을 일찌기도 늦게도 아니게 오늘 자정 열두시, 래일 새벽 령시에 찢자. 일력장을 찢는 순간부터 당신은 철두철미하게 고래희에 들어선다. 그러면 새 일력을 달고 매일매일 일력장을 찢으며 순환의 반복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매일 일력장을 찢을 때마다 유감과 후회가 없도록 순간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