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춘에 살면서 금년에 흑룡강신문을 주문하려고 우편배달부와 말하니 조문판이 없다며 주문이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할수없이 신문사와 련계하니 우편간행물 일련번호로 주문하면 된다고 해서 다시 배달부와 말했는데 목록에 조문판이 없기 때문에 안된다고 하는 것이였습니다. 위챗으로 주문하는 방법이 있다고 들어서 젊은 사람의 손을 빌어서 주문을 마쳤습니다.
나는 50여년을 한해도 거르지 않고 타향에서도 계속 신문을 청해보고 있습니다. 고향 신문은 나의 인생의 길동무이자 친구와도 같이 언녕 두터운 정을 쌓았습니다. 한해는 고향 려명촌에서 신문을 청했는데 북경으로 이사가는 바람에 일년동안 신문을 보지 못했습니다. 신문이 없으니 안달아났습니다. 이듬해 북경에서 신문을 청했습니다. 여기는 늦게 올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번은 시장을 가는 길에 혹시나 해서 우편함을 열어보니 글쎄 세장이나 왔더군요. 생각보다 이렇게 빨리 올줄은 생각지 못했지요. 나는 시장도 가지 않고 집에 올라와 신문을 읽었습니다. 고향 신문을 받아보는 그때 그 기쁜 심정을 말로 표현할수 없었습니다. 그때 그 심정을 인차 글로 써서 신문사에 보냈더니 얼마 안돼 글이 신문에 올랐습니다. 문장 하나 제대로 써본적 없는 인간의 글을 실어주니 얼마나 기쁘던지 말로 이루다 형언할수 없었습니다. 그후로 용기가 생겨 몇편 더 썼습니다.
금년 신문사 기자가 고향의 풍모를 기록한것이 얼마나 나의 마음을 후련하게 하였던지. 얼마 남지 않은 촌민이 고향 마을을 굳건히 지키는 모습이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머리 숙여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우리민족신문의 희망찬 래일을 기원합니다.
/선우윤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