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에서 태여나서 반백을 넘긴 사람치고 뾰족산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루루천년 내려오며 언제 한번 시인의 붓끝에 실려 이름을 날린 적도 없고 풍상고초를 이겨온 리력서를 아름다운 멜로디에 담아 노래 불러준 사람도 없지만 내 마음속에는 마냥 하늘 높이 번쩍 머리를 추켜든 날카롭고 강직한 사나이 존재로 거연히 솟아있다.
사람이 얼굴 생김새와 몸매가 서로 제나름인 것처럼 뾰족산도 역시 천라만상중 한폭의 그림같이 독특한 경관을 갖춰 길손들이 호기심에 끌려 발길을 멈출 때가 많다. 연길시에서 북쪽으로 약30리거리를 상거한 뾰족산은 신창, 석인촌을 거쳐 흘러나온 강물과 황초골안에서 터져나온 시내물이 합친 입구를 파수군처럼 보란 듯이 막아선 산세가 언제봐도 범상치가 않다. 더우기 높이650미터에 달하는 정상에 어느 전설속의 어르신이 일부러 등짐으로 돌비석을 올려놓은 듯 아래에서 문뜩 올리쳐다보면 송곳같이 뾰족한 봉우리가 갑자기 폭우를 몰고오는 먹장구름을 산산히 찢어내동댕이칠 듯한 저돌적인 날카로움이 있다.
학생시절, 집체호생활을 비롯하여 근 십년동안 수없이 뾰족산 근처에서 맴돌며 식수로동이나 땔나무를 장만하는 일을 하면서도 산정상에 올라서볼 생각은 엄두도 못냈다. 그만큼 산세가 가파롭고 엄엄하여 골마다 인적이 드물다못해 신비로울 정도로 괴괴함이 묻혀있었다. 울울창창한 숲속에서 갖가지 이름모를 화초들이 그윽한 향기를 뿜으며 날아예는 곤충들을 유혹하는 자연의 세상, 모든 생의 절주와 리듬이 고요와 적막의 흐름 속에 자연 완성되여가는 섭리를 년륜 속 깊이 감춰둔 산의 모습은 더욱 름름하고 도고해보인다.
뾰족산은 항일의 전적지이기도 하다. 항일투사 림춘추의 장편력사소설'청년전위'을 펼쳐보면 경상적으로 석인촌을 비롯한 주변 마을들의 지명이 거론되여있을뿐더러 한번은 당시 리민촌집단부락근처까지 접근한 유격대가 뾰족산기슭에 숨어 한창 거드름 피우는 왜놈에게 보기좋게 불벼락을 안기고 깜쪽같이 사라진 신출귀몰의 이야기가 적혀있다. 지난날 항일의 피어린 자욱이 어려있어 진달래가 그처럼 곱게 피여나는걸가, 봄철이면 산나물 풍년에 녀인들의 코노래 흥겹게 들려왔고 여름이면 방목장의 피리소리 산새들을 불러와 신록이 한결 짙어만 간다.
지난60년대 주덕해가 뾰족산기슭을 리용하여 땜을 구축하고 큰호수를 앉혀 농토관개건설과 수력발전도 가능한 구상을 무르익혀 리민촌뒤쪽 산중턱으로부터 먼저 길을 빼는 공사를 벌렸다. 하지만 뜻밖에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는바람에 공사는 중단됐고 드디어 산비탈은 살벌한 채석장으로 변했다. 한때 꽝꽝-쩡쩡- 남포소리와 메질소리에 룡골이 허옇게 드러났고 련달아 대면적의 산불까지 일어나 헐벗은 뾰족산의 모습이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자연에 빌붙어살면서 그것을 아끼고 보호할 대신 마구 파헤치는 행위를 서슴치 않았으니 그 시절 재앙은 마실 다니듯 하루 건너 찾아들었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 주덕해의 옛날의 뜻이 찬란한 현실로 펼쳐져 산주위는 거울같이 맑은 호수가 생겨났고 높은 땜에서 쏟아져나오는 비단필같은 하얀 물줄기가 전기를 생산하여 린근의 수많은 농가, 공장, 학교에 보내주고 굽이굽이 연집강을 이뤄낸 량켠은 시민들이 여름더위를 식히는 좋은 휴식터로 탈바꿈을 했다. 어쩌면 뾰족산의 숨소리가 거창한 변화의 화살표를 기록해놓은 그래프가 아닌가싶다.
일전 동창생들의 모임을 리민촌에서 가진적 있다. 파티에 앉기전 모두 중학시절에 한번도 소원성취 못한 뾰족산 오르기를 약속했다. 신들메를 단단히 조이고 가파로운 산비탈을 지그재그로 걸으면서 끝내 산정상에 올랐을 때는 저마다 가쁜 숨을 헐헐 쉬였고 이마에는 땀이 흥건히 돋았다. 하지만 기진맥진했던 순간을 까맣게 잊은듯 서로 핸드폰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남쪽으로는 연길시 모습이 훤히 보이고 서북쪽은 거울같은 호수가 우중충 솟은 산봉우리를 비껴안고 넘실넘실 춤추는 풍경도 황홀하지만 맑고 시원한 공기가 페부속까지 깨끗히 씻어주는 상쾌함을 그저 단순히 기쁨 하나로 표현하로는 너무 무색할 정도였다.
신기루같은 화폭에 넋을 잃다보니 산아래에 내려와 음식점에 빙 둘러앉아서도 줄곧 뾰족산이야기뿐이였다. 몹시 흥분된 상태라 어깨를 들썩이며 저절로 쿵짜작...타령이 나왔다. 이때 풋면목있는 음식점주인이 반갑다는 인사로 일일이 술을 따르면서 알은체했다."장사가 잘 됩니까?" 누군가 불쑥 묻자"예, 괜찮습니다. 이제 가을에 찾아와 보십시오, 곧 양어장을 꾸릴 타산입니다." 주인의 담찬 말에 좌우에서 금시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편벽한 골안에서 손님이 별로 없는데 양어장까지 꾸리겠다니 좀 어벌이 큰데가 있어보여서였다. 성격이 괄괄해보이는 주인이 술 둬잔 마시니 제법 구면인양 말끈을 시원시원하게 풀었다."저기 북쪽을 보십시오, 뾰족산에 저수지가 생겨나 오래잖아 풍경구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때면 이 음식점, 양어장이 잠자고있겠습니까?""암, 먼짓 생각입니다." 곁에서 이구동성으로 찬송가를 불렀다.
나는 사뭇 놀라움을 금치 못해 주인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구리빛 얼굴색에 두툼한 입술이 가진 평범한 산골사람의 입에서 이토록 담찬 예견성을 발산하며 산다는 놀라움에 절로 혀를 내둘렀다. 아무렴 그때면 쉼터를 찾는 인파가 매일 장날처럼 흥성흥성할터인즉 음식점주인의 꿈이 더 크게 부풀어 호함진 열매를 맺힐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오늘의 살림도 좋지만 래일의 희망은 더 좋아 뛰고 또 뛰는 요즘 사람들의 발거름을 누가 따르랴.산천이 변했으니 사람들도 변하고 인생이 달라졌으니 생활의 폼이 날따라 늘어나는 세월이다. 파티가 끝맺혀 뜨락에 나설 때는 어느덧 석양빛이 뾰족산봉우리를 빨갛게 물들이고있었다. 문뜩 부흥기를 맞아 홰치는 뾰족산이 마음의 지평선에서 꺼지지 않는 봉화같이 타오르며 누리의 만복을 불러들이고저 손짓하는것 같아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