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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소야, 제발 죽지 마라 - 김정권

2021-12-12 15:07:38

동생이 고중을 졸업한 해였다. 생산대 빚이 하도 많았던 탓에 동생은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생산대에서 경영하는 산골에 갔다. 우리 생산대의 인삼장은 마을에서 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골 안 막바지에 있었다. 그 골 안을'삼태자'골이라 불렀다. 실지 그 골 안에 삼태자가 살았는지는 몰라도 오랜 옛날부터 그렇게 불러왔다.

우리 생산대에서는 그 골 안에다 막을 짓고 누에치기도 했으며 인삼장도 꾸렸다.

당시만 해도 산에 가 있으면 공수를 더 벌수 있어서 빚이 많은 사람들이 가는 일이 더 많았다. 짐승이 울부짖는 산골에 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해 초겨울, 연길 자동차정비공장에 분배받은 형님이 결혼을 하게 되였다.20여원을 받는 형님의 월급으로는 도저히 잔치라는 것을 치를 수 없었다. 엄마는 속을 태우다 못해 술돈이라도 벌어야 한다며 나더러 나무하러 가라고 했다. 나는 생산대 소를 빌려가지고 동생이 있는 삼태자 골 안으로 수레를 몰고 갔다. 생산대 막집이 골 안 막 끝에 있다 보니 마을과 거리는 거의 사오리쯤은 되었다.

나는 수레를 벗기고 다시 소에 발구를 메웠다. 솔직히 나는 농촌에 있으면서도 소수레나 소발구를 잘 다루지 못하였다. 하지만 동생은 나이는 어려도 아버지를 닮아 부지런하고 농촌 일에 막힘이 없었다.

우리는 아름드리 참나무를 베여 발구에 싣고 내려와 다시 소수레에 꽉 박아 실었다. 그런데 그만 소가 늙은 소라는 것을 미처 생각 못했다. 소는 생산대에서 소문이 있던 비내뿔 둥글소였지만 나이를 너무 먹어 걸음도 느질느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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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나무를 수레에 다 싣고 나는 뒤에서 도끼를 쥐고 슬렁슬렁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앞에서 내려가던 수레가 불시에 빨라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일이 상서롭지 못함을 느끼고 달리는 수레를 따라 아래로 내처 달렸다. 그러나 수레는 점점 더 빨리 아래로 미끄러 내려갔다. 나는 다급히 소리를 쳤다.

"명권아, 빨리 피해라!"

했지만 동생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소 멍에에 딱 붙어서 수레와 같이 내리 쏭기고 있었다. 나는 저러다 동생이 넘어져 수레에 깔릴 것 같아서 속이 한줌이 되어 고래고래 소리만 질렀다.

수레가 한50미터쯤 내려왔을까 할 때 소가 탁 물앉으며 그만 목을 꺽어 버렸다. 동생은 소처럼 땅에 무릎을 박으면서도 소고삐는 그냥 놓지 않았다.

나와 동생은 소가 멍에에 깔려 있으니 소 목바를 풀려고 했으나 너무나 꽉 죄여있는 탓에 도저히 풀 수가 없었다.

"도끼 주오!"

동생이 고함을 쳤다. 나는 인츰 도끼를 건넸다. 동생은 도끼를 들어 소 목바를 찍었다. 그 다음 우리 둘은 안깐힘을 다 쓰며 수레채를 들어 재꼈다. 그리곤 소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 하지만 소는 일어설 수 없었다. 소는 그저 날숨만 쉬쉬 쉴 뿐 좀처럼 일어나 주지를 않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소야, 소야, 제발 죽지 마라! 우리 엄마, 아버지를 봐서라도 제발 일어나다오!"

그러나 무정한 소는 영영 일어나지 못하고 끝끝내 숨을 거두고야 말았다. 그제야 나는 동생에게 물었다.

"너 일없니? 다치지 않았니?"

"일없소."

말은 괜찮다 하지만 동생의 무릎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동생이나 나나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문제는 소가 죽었다는 엄청난 사실이다. 만약 생산대 일로 죽었다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겠지만 이건 완전히 성질이 다른 문제가 아닌가?

그래도 형이랍시고 동생을 위로했다.

"다 죽었는데 뭐 어쩌겠니? 사람도 아니구 쇠 죽었는데 뭐 어쨌단 말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작 속은 잔뜩 얼어 있었다. 이제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며 사람들의 눈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가 하는 것은 엄연한 나의 몫이였다.

나는 그 길로 달리다싶이 마을에 내려와서 대장에게 소식을 알렸다. 대장은 아니꼬운 눈길로 나를 보면서 으르릉댔다.

"인마새끼들이, 짐을 어떻게 실었길래 소를 죽이냐?"

나는 나를 죽이든지 때리든지 마음대로 하라는 식으로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머리만 떨어뜨렸다.

대장은 즉시 사람을 파견하면서 현장을 가보라면서 나를 떠밀었다. 나는 바로 그 길로 천근 무게나 되는 다리를 끌고 다시 사오리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날 저녁, 나는 동생이 불쌍하여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심심산골에 혼자 떨어져 우리 식구들이 사람들에게 무시당할 것을 생각하며 혼자 산에 있는 동생이 심정이 어떠하였겠는가?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쓸쓸하고 얼마나 외로왔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내 설음에 눈물이 좔좔 흘러내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어김없이 이튿 날에는'사원대회'가 열렸다. 어쩌면 나에게는'사형선고'나 다름없는 회의였다. 대장이 먼저 회의 내용을 말하고 나더러 반성하라고 했다. 나는 일단은 무조건 잘못했다며 헐망한 초가집이라도 팔아서라 소 값을 물겠다고 마음에 없는 말을 하였다. 그만큼'죄인'의 태도 표시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드디여'판결'이 나왔다.'사인'은 소가 이미 늙었는데다가 짐을 너무 많이 실었기 때문이고 문제의 성질은 개인의 일을 하다 발생됐기 때문에 무조건 소 값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였다. 나는 판결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불복이란 더구나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그래도 한 동네에서 오래 살아온 정을 봐서라도 생산대에서 추렴삼아 처리해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러나 시대가 시대인만큼 그런 행운은 없었다.

나는 마을앞 소강에 나갔다. 초겨울 강은 차갑게 흐르고 있었다. 나는 흐르는 강물소리에 설음을 한껏 토해 울고 울었다. 객기에 울고, 서러워서 울고, 억울해서 울었다. 그런데 울 일은 뒤에서 더 기다리고 있었다.

전날, 죽은 소를 잡았는데 고기를 사러 오는 사람들이 별반 없었다. 워낙 여윈 소인데다 수소이고 절로 죽은 탓에 피를 제때에 받지 못하다 보니 고기에 피가 퍼져 꺼림직하다는 데서였다. 나는 속이 바질바질 탔다. 어머니도 불편한 몸(어머니는 장기 환자였음)으로 겨우 나와서는 한숨만 풀풀 토해냈다. 속이 안달아난 나는 그저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소고기를 사라고 소리쳐보려 했다. 하지만 정작 소리를 치자니 목구멍이 꺽- 막혀 소리가 나가 주질 않았다. 그러건 말건 소리를 치지 않으면 안 되였다. 이집 저집 다니며"소고기를 삽소!"라고 하는 나의 눈에서는 이름 못할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러나 내가 마을 한바퀴를 다 돌고 왔을 때도 고기를 사러 온 사람은 없었다.

너무도 통분한 나는 또 다시 주저앉아 통곡을 쳤다. 나는 기구한 내 팔자가 원통했고 메마른 인정이 야속했다. 내가 이처럼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마을에서 년장자로 불리는 장아바이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며 천천히 걸어왔다.

장아바이는 혀를 끌끌 찼다.

"얘, 정권아, 너 다시 집집마다 다니며 한번씩 더 일러라! 내 오늘 여기 앉아서 어느 집에서 안 나오는가 지켜 볼란다. 망할 놈들, 이 마을치고 어느 놈이 네 아버지 신세를 안 본 적이 있다더냐... 사람이라면 바쁜 일을 서로 제일처럼 도와주는 게 도리지."

하긴 속에 먹물은 없어도 구들장 놓는 것과 짚이영을 예는데는 우리 아버지 손을 안 빌린 집이 거의 없었다. 그것도 생산대 일을 하다 명절에 쉬는 날이 아니면 비오는 날이였다.

나는 장아바이의 말에 너무 고마워 또 울컥하여 엉엉 울어버렸다. 그러다 차가운 강물로 얼굴을 벅벅 씻고 다시 마을을 한고패 돌았다.

내가 마을을 다시 돌고 돌아오는데 아주머니들이 마주 오고 있었다. 아까는 와서 소고기를 보고 돌아서던 아주머니들이였다. 나는 얼굴도 들지 않은 채 아주머니들을 스쳐 지났다. 등 뒤에서 아주머니가 다른 사람과 하는 말이 어렴풋이 들렸다.

"어이구! 불쌍해서 어디 보겠습데."

나는 그 소리에 또 다시 울컥해났다. 내가 다시 강가에 와보니 숱한 사람들이 소고기 주위에 둘러 있었다.

"열근."

"다섯근."

"스므근."

사람들은 소고기를 뭉텅이로 뚝뚝 떼여갔다. 알고 보니 장아바이가 먼저 사람들에게 이르고 나왔던 것이였다. 나는 마을사람들이 고마왔고 장아바이가 고마왔다.

그런데 참, 고마운 일이 또 있었다. 제2생산대 대장이 오더니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야, 정권아, 이젠 더 팔지 말라. 나머지를 몽땅 우리 대에서 가져간다. 너 생산대는 사람새끼들이 왜 그렇게 처리한다니? 그까짓거 사람이 살다보면 쇠 같은 건 죽이는 일도 있지."

그렇게 소고기는 몽땅 처리되여 많은 빚을 면제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을 형님의 잔치날 이튿 날에 엄마가 또 꺼내는 바람에 우리 집은 다시 한번 울음고개를 넘겼다.

가끔은 고향에 가면 나는 마을 앞 소강에 나간다. 거기에 가면 제일 먼저  소고기 추억이 떠오르면서 내 눈부리가 젖어들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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