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두산에 작가촌이란 울타리 하나를 가지고 있었던 인연으로 나는 내두산을 수없이 드나들었지만 유명한 내두산감자의 눈(움) 뜨기 철에 내두산을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우리 연변에서 내두산감자하면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다. 감자가 주식이었던 가난한 시대를 살아온 옛사람들은 거의 다 아는 셈이다. 그만큼 내두산감자는 그 농마의 풀기가 강하고, 그 맛 또한 일품이다.
내두산감자는 그냥 껍질채로 깨끗하게 씻어서 가마에 푹 삶으면 감자 전체가 거대한 지진으로 균열이 일어난 지구처럼 툭툭 터지는데 그걸 껍질을 발라 입안에 넣으면 목구멍이 터지게 농마의 강렬한 자극이 느껴진다. 또 삶은 내두산감자를 떡 구유에 넣어 떡메로 어린 아이 얼리듯이 살살 쳐내면 내두산감자찰떡이 되는데 그걸 깨소금고물에 푹 찍어 먹으면 천하별미의 맛과 특별한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다. 내두산감자찰떡에는 전설도 있다. 무슨 내두산감자를 찰떡으로 칠 때 떡메에 붙은 내두산감자의 차진 풀기로 인해 떡구유까지 허공에 뜬다는 것인데 찹쌀이 그 소리를 들었더라면 아마도 크게 울었거나 아예 열 받아 죽었을 것이다.
이런 내두산감자의 전설과 현실적인 품위때문에 내두산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사는 연변사람들은 해마다 봄이면 내두산감자종자를 얻어 자기네 고장에 심곤 했는데 결과는 헛수고로 내두산감자의 그 품위와 매력은 퇴색되곤 했다. 가을에 기대감에 부풀어 자기네 고장에 심은 내두산감자를 파서 삶아 먹어보면 웬일인지 내두산감자의 풀기는 밸이 푹 빠져있는 것이라 실망에 목구멍이 꺽 메는 일이었다.
공교롭게 내두산감자를 눈 뜨는 철에 내가 내두산 땅을 밟은 것은"무엇 때문에 내두산감자를 반드시 내두산에 심어야 그 신비한 맛의 전설을 잉태하고, 다른 고장에 심으면 그 신비한 맛의 전설을 낙태하는가?"하는 철학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올해도 아무개네 왕청에 사는 친척이 내두산감자의 눈을 종자로 떠갔다고 하지 뭐요. 그런데 그게 헛수고가 아니겠소. 내두산감자는 내두산에 심어야 풀기가 있고, 맛이 특별한 것이지 왕청에 심는다고 풀기가 일고 맛이 나겠소. 우리 내두산의 흙까지 파다가 감자를 심지 않고서야 어림도 없지. 내두산감자의 맛은 내두산 흙이 내는 것이라오. 왕청감자를 우리 내두산에 심어도 내두산감자 맛이 나지만 우리 내두산감자를 왕청에 심는다고 내두산감자 맛이 나올 리 있겠소. 그러니 내두산감자는 종자 탓이 아니라 내두산의 흙이 좋기 때문이라오."
몇몇 내두산의 할머니들이 내두산감자추렴을 하듯 빙 둘러앉아 재빠른 손놀림과 귀신의 수염도 베올 빈틈없는 칼질로 내두산감자의 눈을 떠내면서 하는 소리였다.
이네들로부터"내두산감자는 그 종자가 자신의 고유한 맛을 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두산의 흙이 특유한 맛을 내는 것이다."라는 소리를 듣게 된 순간 나는 드디어 내두산감자는 무엇때문에 내두산이 아닌 타지에 옮겨 심으면 고유하고도 특이한 자신의 맛을 전염시키지 못하는가 하는 내가 꽤 오래도록 파헤치지 못했던 궁금증을 풀어주었고 또한 내가 다시금 흙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가 되였다.
내두산의 가까운 린근에서 살았던 우리 아버지가 그랬었다. 늘 내두산감자의 맛이 좋다고 하면서 누이가 살고 있는 내두산에서 내두산감자종자를 한 자루씩 가져다 이른 봄에 눈을 떠 정성스레 심었지만 해마다 가을이 되어 내두산감자를 수확해보면 그냥 우리 동네에서 심던 잡종감자보다도 못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늘"이놈의 내두산감자는 다른 땅에 심으면 제 맛을 못내는 반푼이종자인 모양이야."라고 탄식을 했다. 그렇게 내두산감자가 좋으면 아예 내두산으로 이사 가서 살면 그만인데도 아버지는 자신의 고향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고 고집도 부렸다.
흙은 아마도 위대한 자궁일 것이다. 내두산감자가 종자 탓이 아니고 흙의 탓이였을 정도로 말이다. 옳은 말이다. 흙 속에 심는 농작물이 어디 그 종자가 우수해서 특산이 되겠는가? 종자가 아무리 좋을진대 좋은 흙을 만나지 못하면 제구실을 하겠는가? 흙이 척박하면 비료를 넣어서 흙의 질을 높이는 것이 요즘 현대농업의 비법이 아니던가.
흙은 모든 물종을 품는다. 그리고 모든 물종의 체질을 키워주며, 그의 령혼(맛)을 낳는다. 흙은 모든 물종을 품고, 모든 물종의 체질을 키워주고, 령혼을 낳아주면서도 늘 겸허한 자세이다. 민들레홑씨 하나가 날아와도 자신의 품에 품어 싹을 튀어주고, 그의 체질을 키워준다. 그리고 그의 맛도 낳아준다. 내두산감자의 고유한 맛과 그 특유한 맛은 백두산의 화산재(암석이 타버린 재)와 부식토(식물이 썩은 흙)의 혼합인 내두산 흙이 만들어낸 것인데 사람이 그 종자의 우월함만 탐내어 종자에 억지생리를 부여해서는 원만한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모든 물종의 종자를 품는 것은 흙이다. 그리고 그 생명을 낳아주고, 키워주는 것도 흙이다. 그러나 흙은 뽐낼 줄 모르고 겸허만 안다. 고로 흙은 위대한 자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