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하여라,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모든 나무 덤불과 돌이 외롭다
어떤 나무도 다른 나무를 보지 못한다
누구든 혼자이다.
나의 삶이 아직 환했을 때
내게 세상은 친구들로 가득했다
이제, 안개가 내려
더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어둠을, 떼여놓을 수 없게 나직하게
모든 것으로부터 그를 갈라놓는
어둠을 모르는 자
정녕 그 누구도 현명치 않다
기이하여라,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삶은 외로이 있는 것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한다
누구든 혼자이다
세계의 명시 헤르만 헤세의 시'안개 속에서'는 안개 덮힌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의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읊고 있다. 그럼에도 이 시를 읽고 또 읽으면 마음의 안식을 주고 산만한 마음을 회복시켜 준다.
어쩌면 존재 자체도 희미하고 가는 길조차 막막한 힘든 삶이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새하얗게 엉켜진 일본에서 가까스로 무작정 노를 젓는 나 자신에게 이 시는 엄마의 자애로운 품같은 존재였고 나를 리해해줄수 있는 유일한 휴식터였던 것 같다.
캄캄하게 가리워진 시야에 온몸이 불안감에 경직되는 이런 일상에서 벗어나 가끔은 신비로운 자연 속에 들어가서 상큼한 공기를 마시면서 답답한 가슴을 털어놓고 싶어 금년5.1절 련휴를 빌어 안개가 명물이라는 카루이자와(軽井沢)라는 리조트에 놀러 갔다.
도쿄에서 전철로 한시간 거리인 나가노현(長野県)의 동부에 있는 편안하고 품위있는 일본 최고의 리조트 지역이다.
황족이나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도 사랑해서 늘 찾아온다는 이 곳은 모든 번잡한 고민과 근심을 내려놓고 거치장스러운 허울을 벗어던지고 호사롭고 여유롭게 삶의 휴식을 즐길수 있는 최고의 장소라고 한다.
일년중100여일은 신비로운 안개속에 뒤덮혀 한치의 눈앞도 보이지 않는 숲에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저도 몰래 또 다른 새로운 숲으로 들어서게 되면서 마음속 깊은 상처들이 치유된다는 카루이자와 리조트에 찾아 왔다.
두꺼운 안개 속에서 여직껏 참고있던 설음을 내부어 큰소리로 통곡이라도 치면 속이 거뿐해질것 같았고 나의 삶과 흡사한 이 안개속 구름을 뚫고 하늘을 향해 소리쳐 물어보고 싶었다.
"나의 꿈은 정녕 무엇이고 나의 삶은 대체 어디에 있나요? 안쓰러운 꿈을 찾아 줄달음쳐 온 이 곳에. 허황한 성공을 위해 안타깝게 모지름을 쓰는 이 곳에. 눈도 코도 입도 귀도 다 막혀버린 무정한 이 곳에. 제가 왜서 바위처럼 나무처럼 그림처럼 서있는것일가요?
걷고 싶었던 그 길이. 가고 싶었던 그 길이. 설마 바다라 해도 꼭 건느고 싶었던 그 길이. 행복의 피안에서 불타오르는 태양을 건져보고 싶었던 그 길이. 하늘을 찌르는 전나무와 락엽송이 즐비한 이 숲속에서는 정녕 보이는것입니까? 안개가 걷히면..."
절규에 가까운 웨침소리가 안개로 덮힌 숲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바람따라 요동을 치며 방황을 한다.
목이 터지게 소리를 치고 나면 홀가분할줄 알았던 나 자신. 꼭 이룰 수 있다고 믿었던 꿈. 꼭 잡을 수 있다고 믿었던 행복. 꼭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신념. 그것을 위해 거짓없이 미친 듯이 걸어온 길을 의심하고 쓸쓸한 그 길에서 혼자인 듯 몸을 움츠리고 있는 자신이 갑자기 낯설어지는 순간이였다.
누구에게 정녕 무엇을 위안받고 싶었던 것일가?
인생이란 홀로에 익숙해지면서 성숙되어 가는 길이 아니였던가?
자신의 인내를 테스트하는 안개길에서 종점으로 다가서지도 못한채 혼자여서 막막하다고 착각하는 현실에 소름이 돋는 순간이었다.
멀수록 짙다는 안개에 가리워져 비록 하늘은 보이지 않지만 금방 눈앞에 바위돌 사이에 파아랗게 끼여나 초롱초롱 이슬을 머금고 맑게 웃어주는 이끼가 보이지 않는가?
눈을 감으면 찬란한 태양이 안개를 말끔히 거두어내고 푸르른 저 언덕 우에 바라만 보던 꿈나무에 반짝반짝 무수한 별까지 걸려있지 않는가?
귀를 열어보면 외면하고 싶었던 포근한 안개가 목이 말라 갈라 터진 옷자락을 적셔주는 소리가 정겨웁지 않는가?
저도 몰래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고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눈을 꼭 감았다.
고요해지고 랭정해진 머리 속으로 망망한 안개바다를 정처없이 헤매는 나의 삶에 말없이 어깨를 다독여주고 손을 내밀어 주던 고마운 사람들과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필림처럼 무수히 떠오른다.
가파롭고 험난한 절벽에서 바둥거리고 허우적거릴 때마다 항상 옆에서 두 손을 꼭 잡아주는 나의 소중한 가족들과 가슴 미여지게 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항상 든든했다.
그리고 가슴이 울컥거리는2011년3월11일 일본 동북 대지진과 무시무시한 쓰나미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잔인하게 빼앗아갔던 가슴 시린 아픔도 헤집어본다.
대지진의 후유증으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핵복사문제 때문에 일본 동북과 관동지역은 경제적 마비가 왔었다.
당시 물류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던 나에게도 크나큰 시련이 다가왔던 그 시기, 수출용으로 저축하고 정기적으로 큰 회사의 물품을 받고 있었던 그 시기에 만톤이 넘는 상품들이 핵방사선 오염으로 하루밤새에 쓰레기가 되였다.
나의 인생의 전부였고 성공만을 바라고 목숨처럼 키워 온 회사였다. 그동안 악착같이 가꿔 온 꿈이 뼈를 가는 아픔 속에서 산산히 부서지는 생사를 건 마지막 순간에 놀랍게도 따뜻한 구원의 손길을 기꺼이 내밀어 준 맑은 아침이슬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지역 은행의 행장들과 거래처 회사 회장님들이다.
젊은 사람들이 꿈을 가지고 낯 설고 물 선 일본에서 열심히 노력한다고 십년 가까이 옆에서 조용히 응원해주던 분들이다.
갈대라도 있으면 잡고 싶은 심정이지만 고민할 겨를도 없이 갑자기 다가 온 비참하고 당황한 현실이 다리에 힘이 풀려 넋을 놓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나에게 다가왔다.
살아 있는 것에 고마워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꿈을 절대 포기하지 말고 회사경영에 있어서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문득 찾아 올수 있는 하나의 큰 산이고 꼭 넘겨야 할 고비라고 하면서 위기를 지혜롭게 넘기는 사람이 되라고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크나큰 도움을 주셨다.
덕분에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꼭 일년만에 오또기처럼 다시 꿋꿋이 일어설 수가 있었고 그 분들의 바다같은 은혜를 입은 나의 숭고한 꿈은 오늘도 변색하지 않고 눈덩어리처럼 점점 커지고 있다.
그 일을 겪을 때 한 회장님이 해주신 얘기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인생에서 성공이란 부자가 되기 위한것이 아님을 절대 명심하라.
돈을 쫓는 불쌍한 사람이 되지말고 너의 재능으로 벌어들인 부로 열심히 노력하는 자에게 꿈을 심어주고 한사람이라도 더 행복한 생활을 바라볼수 있도록 늘 명심하는 가치있고 인격높은 경영자가 되여라.
그 고독한 길에서 힘들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끝까지 걸어가는 과정에 당신은 성장할 것이고 삶도 풍요로워질 것이다. 혼자인 것 같지만 당신을 믿고 지켜보는 눈길은 사처에 널려있다.
이것이 오늘 당신을 도와주는 리유이고 당신에 대한 나의 믿음이고 희망이다."
짙은 안개에 가려 끝이 보이지 않는 아득한 인생의 터널 속에서 물불을 가리지 못한 채 앞만 보며 달리다가 혹여 목적지를 잃고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가 미리 깨우침을 주신 분이다.
나 자신이 원하는 진정한 꿈과 행복, 삶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매일같이 오늘 이 시각에도 곰곰히 고민하며 인생을 살아가게 만드신 분이다.
외국이라는 대해에서 마음을 꽁꽁 숨기고 머리를 숙인채 오로지 삶에 대한 의욕으로 성공을 바라보는 나의 애처러운 눈빛에 대한 안쓰러움이였으리라.
결과보다는 과정이 아름다운 삶의 진실 속에서 안개에 휩싸여 외계와 격리된 무서운 고독을 피할 수가 없다면 마음껏 즐기라는 다독임이였으리라.
회장님의 진심어린 당부에 그 혹독한 상항에서도 외려 다른 사람과 비기지 않고 체면없이 욕심을 내지 않고 온갖 오염에 물들지 않아 더 맑고 투명한 자신을 찾아갈 수가 있었고 굳이 고집하며 걷고 있는 안개길의 깊은 의미를 깨우칠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루한 세월 속에서 그 깨우침이 초라하고 뿌리없는 꿈조각들과 함께 숨쉬기조차 힘들고 묵직한 물방울들에 지겹게 눌리워 희미한 바람따라 방향을 잃고 허우적거리며 숨통을 졸여왔다.
자기 자신을 서서히 알아가고 인간다운 자신을 찾아가는 안개길. 모든 고통을 숨을 죽이고 감수하고 꼭 견뎌내야 하는 안개길. 그 안개길을 헤쳐나가려면 멀고 아득할지라도 몽롱함을 한올 한올 인내성있게 벗기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생명의 원점에 서서 미친 고독 속에서 성장을 익히고 그 속에서 가치있는 삶의 깊이를 헤아릴 수 있는 반듯한 자세와 조급함을 내려놓고 행복을 끝까지 가꿀줄 아는 예리한 촉감과 부드러운 입김이 필요하다.
멈추었던 심장이 다시 쿵쾅거리는 강한 전률속에서 귀를 꼭 막고 있던 두 손을 내리우고 살며시 눈을 떠보았다.
어느새 빛의 흐름을 방해하던 두꺼운 안개가 가뭇없이 사라지고 하늘을 찌를 듯한 무성한 숲사이로 뜨거운 태양이 수천수만의 희망을 신비한 빛으로 뿜어대고 있었다.
차안과 피안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막막한 안개길을 슬기롭게 너머 불타오르는 태양을 건져보는 격동 속에서, 태양의 열기를 그대로 품고 철이라도 녹일 수 있는 래일의 나 자신을 잉태한다.
티없이 깨끗한 자연과의 마음 담은 대화 속에서 허위의 옷을 모조리 벗어던지고 카루이자와 리조트 안개에 지쳐있던 몸과 마음을 포근하게 담군다.
헤르만 헬세의'안개속에서'를 읊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