黑龙江日报朝文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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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우리 공항의 시간- 별똥별

2021-12-12 15: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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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 화단에 빨강 봉선화들이 수런거리며 바람에 몸을 맡긴다. 나는 허리 굽혀 키 큰 꽃잎과 작은 꽃잎에 차례로 입술을 가져다 댄다. 수수하지만 명랑이 안해, 천방지축이지만 귀염둥이 딸애의 향기가 난다. 한결같이 공항에서 나를 바래주고 마중하던 안해와 딸애를 오늘은 내가 맞는 공항의 시간이다.

한국에서 직장생활8년차, 매번 세모면 나는 중국 청도에 있는 집으로 설 쇠러 돌아가곤 했다. 배가 두둑이 나온 선물가방을 실은 카트를 밀고 수많은 환영인파 속에서 딸애와 안해를 찾아 공항 출구에 나서면 나는 개선장군마냥 우쭐하면서도 가슴 설렜다. 그처럼 내가 촌스럽게 밀가방과 백팩을 메고 지고 끌고 하면서 인천국제공항으로 들어서던 세월의 페이지가 엊그제 같다.

한국 인천공항과 중국 청도 유정공항은 내 가족과의 끊임없는 리별과 상봉 속에 어김없이 애끓는 추억의 연장선이 되어주는 줄다리기 같은 곳이다. 가족이 곁에 있지 않으면서도 함께 하는 후광효과 때문에 나는 그 힘들고 외로운 고행의 나날을 묵시적으로 견뎌낼 수가 있었다. 그 나날은 험한 공장 일을 나가면서 한화로 억대 소리가 나는 아파트 대출을 거의 갚는 등 가장의 무게를 뻐근하게 감당해낸 값진 순간들이었다. 잠을 자고 깨나면 힘이 불끈 솟는20~30대의 젊은이는 아니지만 언제나 가족이란 참의미의 마중물을 부어주고 나면 가슴 밑바닥에서 저도 모르는 새 힘이 맑고 시원한 샘물처럼 용솟곤 했다. 닭 홰치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리라는 청도-인천행 티켓 값은 저렴한 때도 있지만 그것마저 아끼고 모으면서 설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모두가 제 식구들과 제 집서 알콩달콩 맞고 보내는 한해의 그믐날만은 없어 보이기 싫었으니까.

해마다 칠월칠석 날이면 까치가 놔준 오작교를 타고 만나는 견우와 직녀처럼 세모가 되어야만 만남이 이뤄지는 우리 부부이기도 하다. 년말부부인 안해와 나에게는 남들이 주말부부요, 월말부부요 하는 것까지 부러운 사치다. 삿갓 쓰지 않은 나그네일 뿐 나는 가정이란 조건반사적인 환경에서 시나브로 낯설어지고 존재와 역할이 잃어진지 한참 되였다. 나는 딸애에게 자유분방하게 푸른 하늘 길로 오다가다 들려 선물폭탄이나 던져놓고 가는 뚱한 려행객일 뿐이다.

요즘같이 입맛이 없는 많은 날, 감자와 풋호박, 돼지고기를 송송 썰어 넣은 안해가 만든 곱돌 된장국이 떠올라 빈입을 쩝쩝 다시기도 했다. 회사 식당밥은 아무래도 가족의 건강을 책임진 안해의 밥상처럼 정성이 미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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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귀국한 나는 또 어떤가. 편식하는 응석받이 딸애가 학교 갈 시간이 다 되여가는데 안해의 밥 먹어라는 다그침으로 악기조율 방이 따로 없다.1년 만에 돌아와서 달콤한 늦잠을 자고픈 내게 시끄러워도 그 잔소리가 오랜만에 정답기만 했다. 남편에게 문손잡이 고쳐줘, 형광등 갈아줘, 쌀주머니 옮겨줘 하고 일을 맡겨도 나는 그 시간만큼 잔심부름이 즐거웠다. 딸애가 함께 밖에 나가 줄넘기도 하고 로라도 타자고 졸라도 나는 예전처럼 고사리손을 밀어내는 거절을 못했다. 그것도 큰소리로 짜증내던 내가 간 곳 없고 딸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그래, 우리 공주님 솜씨가 그동안 늘었나 볼까."하면서 짝꿍으로 신나게 놀아주다보면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하고 저도 몰래 중얼거리고 마는 것이다.

드디여 안해와 딸애가 인천공항출구를 나선다. 나는 신바람나게 달려가서 닭이 날개로 병아리를 보듬듯 내 식구들을 껴안는다. 공항마중, 이 낱말만 떠올려도 가슴이 뛴다. 언제나 먼 청도공항까지 나를 마중하던 안해와 딸애의 설렘을 오늘은 내가 인천공항에서 고스란히 체험해보는 것이다. 부메랑처럼 오랜 시차를 두고 한 자리에서, 한 길로, 똑같은 사람들로 거듭하여 어우러진다는 것은 넘치지는 않아도 결코 모자라지 않는 행복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 우리 가족의 만남은 마중물이 된 내가 가족의 한국방문을 이끌어낸 것이다. 안해와 딸애와 함께 하는 일주일간 붙어살이 벌레처럼 날아갈세라 떨어질세라 꼭 붙어서 구경을 다녔다. 경복궁, 민속촌, 남산타워, 동대문시장, 대공원, 박물관... 남는 것이 사진뿐이라고 우리 가족은 스마트폰으로 눈자리 나도록 사진도 많이 찍었다.

동물원 쉼터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난 딸애는 금방 돌아서서는 또"아이스크림" 타령을 한다. 찬 것을 많이 먹으면 배가 아플 거라고 핀잔주려다가 도로 꿀꺽 삼켜버리고 만다. 딸애가 해라해라 할 때는 어깃장을 놓으며 안하던 우리말을 아주 분명하게 랑랑하게 번지고 있었던 것이다. 웬 일? 안해와 나는 경이에 가까운 눈빛 교환을 했다. 그 시각만은'삥치린(冰淇淋)'이 아닌 아이스크림을 얼마든지 사주고 싶은 기특함에 딸애를 다시금 쳐다봤다. 그 뒤로도"어머, 예쁘다!""멋지다.""맛있다."라고 낱개의 우리말을 꼴깍꼴깍 토해내기 시작한다. 다른 또래들이 하는 것을 눈썰미 좋은 아이가 보아두었는지 어르신을 만나면"안녕하세요?" 인사도 건네고 지하철에서는 살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서 양보를 하는 것을 보면 애늙은이 같다.

그래서 환경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던가. 정규적인 민족교육이 전무하다싶이 한 중국 청도에서 한족 유치원에서부터 초등학교5학년으로 올라가기까지 우리말을 조금 알아듣고 내뱉지 못하는, 례의 없는 한족애로 둔갑해가서 가까운 친인척들을 만나면 민망했던 일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한국방문 후 중국집에 귀가한 딸애는 휴대폰으로 영상 통화하는 내게 우리말로"아부지"라고 불렀다. 순간 가슴이 후끈거렸다. 이제야 아비 노릇을 제대로 하는 것 같았다. 한꺼번에 서운함이 가셔지면서 이대로 몇년동안 더 안보고 살아도 딸애가 스스로 알아서 다 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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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공항에서 식구들을 집으로 떠나보낼 시간이 되자 마중할 때와 다른 허허함이 가슴구석을 사로잡았다. 그렇다면 수많은 내 등을 본 안해의 심정은 어땠을까?! 힘찬 재회를 깍지걸이하면서 마음이 아닌 마음으로 보내 주었으리라. 빈주먹뿐인 내게 덜컥 시집와서 이날 이때껏 고생만 해온 안해, 안 되는 자영업 한다고 천지간에 싸돌아다닌 나와 맞벌이를 하며 딸애 키우는 것까지 전담이었다. 머나먼 해외까지 끝없는 석별의 고뇌마저 그녀의 차지였었지 않는가, 오로지 일순위인 가족을 향해 모든 질곡을 감내하고 헤쳐 온 안해를 생각해서라도 나는 바깥에서 한 가족이란 헬리콥터를 조종해가면서 한눈을 팔수 없었다. 딴생각을 하는 비행사가 조종하는 려객기에는 려객들이 불안해서 앉을 수가 없다. 안해와 딸애라는 려객을 안전하게 행복이라는 목적지까지 착륙시켜야 하니깐.

칠월칠석 날 만나는 견우직녀는 까치가 다리를 나줬다면 우리 부부에게는 항공기가 오작교를 놔준다. 언제까지 견우로, 직녀로 살아야 할지 정해진 날자는 없다. 그러나 확신한다. 화단에 하느작이며 님을 향해 반겨 맞는 봉선화처럼, 안해는 일편단심 변함없이 래일도 공항에 나와 나를 맞고 배웅해주리라는 것을. 딸애도 언젠가 철이 들어서 부득불 가족을 리탈해야 하는 아빠의 로고를 리해하리라는 것을. 그렇게 희망과 아름다운 미래를 안고 사는 가족이라면 단란히 평범한 한 가족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날이 우리에게 하루빨리 다가오리라 믿는다. 남북 리산가족의 슬픔에 비하면 우리 가족의 별거는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말이다.

값나가는 선물과 목돈도 중요하겠지만 더 필요한 선물이 바로 아무데나 던져놓아도 자기의 위치로 정확히 돌아오는 부메랑처럼 변함없이 밥상머리 빈자리를 채우는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질서다. 이제 나의 소망은 가족끼리 맞은바라기처럼 화사하니 마주 쳐다보고 아기자기 사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안해, 딸애는 서로서로 우리 가족에게 행복을 이끌어내는 더없이 소중한 마중물이기도 하다. 영국 소설가 조지 엘리엇은 리별의 아픔을 맛봄으로써 사랑의 심연을 들여다본다고 어필한다. 우리 가족의 리별은 아쉬움을 딛고 언제나 새로운 만남의 양지에 서있군 했다.

공항은 어쩜 우리 가족의 사랑의 나침판이다. 외로움도 서러움도 기다림도 그리움도 다 이 곳에서 녹여버리고 즐거움, 신바람, 행복함, 사랑함으로 세탁해내는 것도 여기에서다. 가끔 몸과 맘이 춥고 힘들 때 공항으로 마음을 떠나보내면 이곳만큼 따스한 가족에 대한 추억이 더 이상 없다. 꽁지발을 하고 서서 짝짜꿍이로 반기던 딸애의 동화 속 공주같은 얼굴, 돌아갈 때는 몸조심하라는 한마디 속에 모든 것을 담아내던 안해의 수줍은 미소, 공항과 공항이란 공간에 소묘해내면서 나는 지겨운 직장생활의 천리 로정도 그리 힘들이지 않고 경유해올 수가 있었던가 보다.

우리 가족의 밝은 미래를 위해 나는 또다시 푸른 하늘로 날아오른다. 안해도 딸애도 난다. 사랑의 라침판을 따라 모두 날개가 돋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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