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의 늦은 겨울, 업무 학습차 회사 언니랑 운남성에 위치한 리강시에 다녀온 적 있었다.
이틀동안의 벼락공부를 마치고 드디여 맞이한 선물같은 자유시간! 고르고 골라서 첫 려행지로 우리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여 있는 국가5A급 명승지 리강고성을 선택하였다.
리강고성에 들어서니 청석판을 깔아놓은 맨들맨들한 돌길을 따라 길 절반을 차지하고 맑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강에는 크고 작은 한쌍의 물레방아가 사이좋은 부부처럼 나란히 서있었고 그 너머로는 동년시절 고향에서 수도없이 보아왔던 수양버들이 한줄로 쭉 늘어선채 흐느적거리며 타향의 생소함을 덜어주고 있었다.
몇백년동안 잘 보존되여진 목조건물들이 소수민족 상업문화와 이색적으로 조화를 이룬 곳에서 듣도 보도 못했던 음식들을 맛보고 알록달록 희한한 기념품들과 사처에 걸려있는 소원패들을 구경하노라니 언니와 나는 아예 혼이 쏙 빠져나갈 지경으로 흥분되여 있었다.
이리저리 구경하다 우리는 선물용으로 나시족 수공예품 고르기에 나섰다. 귀찮은게 질색인 내가 값싸고 화려한 목수건5개로 쇼핑을 후딱 마무리할 동안 꼼꼼한 언니는 이것저것 만져보고 걸어보며 흥정에만 열을 올리고 있었다. 보아하니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 언니 옆구리를 쿡 찔러 주변을 둘러보고 온다 귀띔하고는 혼자서 골목길을 나섰다.
우물안 개구리가 어쩌다 하는 멋진 구경도 잠간, 혼자 있는 시간이 슬슬 불안해져 급기야 언니를 찾아 오던 길을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인파를 헤가르며 헐레벌떡 도착한 가게. 어라~ 언니가 없다?! 가게 주인이 가리켜주는 방향으로 언니의 그림자를 오래도록 쫓아봤지만 끝끝내 잡혀주지를 않는다.
손에는 방금 산 목수건 봉다리뿐, 거치장스럽다고 핸드폰도 호텔에 두고 나온 상태이고 돈도 꼼꼼한 언니한테 전부 맡기고 없는데...
드디여 얼굴이 화끈거리고 목이 타기 시작했다.
거들떠보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타향땅에서 길을 잃고 우두커니 멈춰서 있노라니 기회가 왔다는듯 서글픔이 꾸역꾸역 안으로 밀려든다. 책에서 보았던 어떤 유명한 스님의"우리는 모두 풀같고 개미같은 존재"라던 말씀과 함께...
어쩌면 우리는 정말로 거대한 시공간속에 잠시 머물다 가는 그냥 어떤 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한장의 싸구려옷보다도 주목받지 못하는 지금의 나처럼…
굳이 걔네들보다 조금은 더 낫다고 우기고 싶다면 그건 오직 우리가 맺고 있는 사랑의 관계때문이 아니겠는가!
혹 그동안 내가 이토록 소중한 주변 관계들을 너무 홀시하고 살아온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바쁘다는 핑게로 생활비 조금 보태 드리고 관광 몇번 시켜드리는거로 효도를 대신하고, 식성에 맞춰 밥상 갖춰본 적은 별로 없으면서 내 비위 못 맞춘다 늘 남편을 원망하고, 내 가방이 내 것이고 내 핸드폰이 내 것이 듯이 딸애도 당연히 내 것인줄로 알아 일방적인 강요를 일삼고,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친구의 사유방식을 어처구니 없다 여기고...
그동안 너무 가까이에 두고 있어서 미처 알아주지 못했던 내 행복에 대한 미안함에 괜히 눈물이 났다.
딸 자랑에 신이 난 엄마에 한방울, 감기 걸렸다고 남편이 챙겨주던 생강차에 한방울, 련애상담을 청해오던 딸애의 고민에 한방울, 떠오르는 친구들 이름 하나하나에 또 방울방울...
얼마나 울었을가...
역시 려행객인 듯한 이십대 아가씨 둘이 내 앞에 와서 마주섰다.
"저희가 뭐 도와드릴 수 있을가요?"
"..."
"혹시 뭐 잃어버리셨어요?"
"아니요. 잃은게 아니고 찾았어요."
"..."
"핸드폰 좀 써도 될가요?"
"네."
뚜~뚜~ 핸드폰 너머로 평소보다 두 옥타브는 더 높을 것 같은 언니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온다.
"여보세요~"
"언니, 나야"
예기치 못한 내 울먹임에 무척이나 당황한 듯 언니가 급작스레 목소리 톤을 낮추며 말까지 더듬는다.
"오…괜…찮아~괜…찮아~ 사람들한테 물어서 물레방아 있는데로 와. 나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응 알았어... 고마워 언니..."
무엇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를 언니에게 나는 속으로 가만히 속삭여 보았다."언니야, 잠간이나마 나를 혼자 내버려둬서 너무너무 고마워."
그렇게 언니를 잃어버렸던 헤프닝의 시간은 내게 값진 선물이 되여주었다.
려행이란 결국 우리가 인생을 재발견 하고'나'를 완성해 나가는 일이 아닐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