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는 강가의 둔치에 뿌리를 내리고 흘러가는 강물과 대화를 나누며 년륜을 새겨간다. 버드나무에는 오랜 세월 자기를 키워온 흔적인가 옹이가 우둘투둘하다. 그 옹이에서 사람들은 버드나무의 수령과 지나간 세월의 발자국소리를 듣게 된다. 강은 둔치에 버드나무가 있는 것으로 하여 안존하고 봄이면 푸른 옷을 입는 나무에게 수액을 푸짐하게 공급한다. 강과 나무는 친구이고 둔치의 버드나무에 버들꽃이 필 때면 강물은 기슭을 핥으며 출렁출렁 꼽새춤을 춘다. 강가 둔치에 있는 버드나무는 강물의 애무를 받아서인지 름름하고 미끈하다. 봄이면 남먼저 봄소식을 알리는 버드나무는 일상에 쫓기던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만든다. 버드나무는 예부터 사악한것을 물리치는 벽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버드나무가 벽사력을 가진 리유는 첫째로 버드나무의 한자인 류(柳)는 목(木)과 묘(卯)를 합한 글자로서 묘(卯)는 동방(東方)이며 동방은 곧 춘양(春陽)을 의미하기 때문에 음(陰)을 굴복시키고 백귀를 물리칠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둘째는 버드나무의 잎의 모양이 날카롭고 뾰족하기 때문에 귀신은 이것이 무서워 접근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버들잎 모양으로 만들어진 화살촉을 류엽전(柳葉箭)이라고 하는 것도 그 잎 모양의 날카로움에서 나온 것이다. 셋째는 버드나무는 그 가지를 거꾸로 꽂아 놓아도 살 정도로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 여기에서 파생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야외에서 젓가락이 없어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대용했을 때 쓴맛을 경험한 적이 있을텐데 이 쓴맛을 내는 물질이 바로 인류 최고의 의약품이 된 아스피린의 주성분이다. 버드나무의 겨울눈은 잔털이 보시시한데 봄이면 부드러운 바람이 살랑 불어도 빼대대 눈을 뜨고 봄맞이에 안달이 나 옴찔거린다.
시골에는 버드나무가 없는 마을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마을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길가에 버드나무가 여기저기 서 있었고 마을앞 개울가 방천둑에는 수없이 늘어져 있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왕버들의 로거수는 대부분 마을을 지키는 동신목으로 보호를 받았고 마을의 지표목처럼 되여 있었다.
여름철 개구쟁이 아이들이 모여 물장구를 치며 멱감던 곳도 버드나무 늘어진 시내가였고 반두나 낚시대로 고기를 잡던 곳도 역시 버드나무가 서있던 개울이나 방죽이었다. 마을 아낙네들이 잡담을 나누며 빨래를 하던 곳도 버드나무가 서있던 개울가인 경우가 많았다. 아름드리 자란 버드나무 밑 공지는 농사군들의 새참이나 점심을 먹는 장소로 리용되기도 하였고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하였다. 때로는 동네 처녀 총각들의 밀회 장소로 리용되기도 했다. 고향마을을 떠나올 때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마을을 되돌아보던 장소도 바로 그 버드나무 아래였는지 모른다. 시들지 않는 사랑과 떠나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의 정표로 강가에 흔하게 피는 버들가지을 꺾어 떠나는 사람의 손에 쥐여주었다는 사랑이야기도 있다.
이런 설화도 있다. 한 나그네가 먼 려정길에서 목이 너무 말라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서 우물가로 갔다. 거기서 한 아주머니를 만나서 물 한모금만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근데 이 분이 버드나무잎을 표주박 우에 넣어 주는 것이였다. 천천히 마시라는 의미였다. 급하게 달려온 남정네가 벌컥 마시면 체 할까봐 배려를 해준 것이였다.
왕버들이나 다른 버드나무 종류의 버들꽃(柳絮)은 소양제로서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버들꽃은 남자의 성욕을 감퇴시키기 때문에 버들꽃이 피는 암나무는 자손이 귀한 집에서는 울안에 심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버드나무의 소양제로서의 효과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무척이나 녀자를 밝히는 난봉군이 있었다. 이 난봉군은 마음에 드는 녀자만 보면 유부녀나 처녀를 가리지 않고 무슨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기어이 욕심을 채우고마는 색광이였다.
그가 어느날 저녁에 술이 거나하게 취해 집으로 돌아가던 중 개울가를 지나게 되었는데 그 개울가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인 듯한 녀인이 막 옷을 벗고 목욕을 하려고 나서는 참이였다. 난봉군은 대뜸 달려가 껴안고 밤새도록 씨름을 하였다. 그런데 그 이튿날 아침에는 기진맥진하여 쓰러졌다고 한다. 그 이후 그 난봉군은 양기를 모두 잃어 다시는 남자 구실을 못하게 되었는데 그 녀인은 다름아닌 버드나무의 정(精)이었다고 한다.
어린시절 버들가지를 꺾어 피리를 만들어 빌빌 불고 다닐 때 이웃에 사는 순이가 웃으며 달라고 했다. 자기도 불고 싶다고 성화였다. 하여 버들피리를 주었더니 끝내는 소리를 내지 못하고 울었다. 강가에서 메기며 붕어를 잡아서는 버들가지에다 꿔여서는 집으로 달려갈 때 신나던 일이 어제 같다. 버드나무 밑에서 장보러 간 엄마를 기다리며 버드나무 가지사이로 얼기설기 감기는 저녁노을 빛을 바라보던 때가 그립다. 고향의 둔치에 서있는 버드나무는 사연도 많고 자랑도 많다.
한달 전 고향으로 갔더니 한국에서 돌아온 명수가 버드나무가 우거진 주위의 잡초밭을 양어장으로 만들어 메기를 키우고 있었다. 하여 몇년을 두고 한산하던 버드나무 숲이 생기를 찾고 매일 낚시군들이 찾아들고 있었다. 고향을 지켜 비바람을 이겨내면서 자란 고향의 둔치에 서있는 버드나무는 오늘도 다시 활기를 찾는 고향땅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더욱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