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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촉촉한 소사랑 이야기- 박영옥

2021-12-12 15:06:43

동물중에 농사일을 돕는 동물을 말하라 하면 누구나 다 소라고 할 것이다. 소는 농사일을 돕는 고마운 짐승이며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는 동물이기도 하다. 소한테는 인내력과 성실함 그리고 근면한 정신이 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그처럼 소를 아끼고 사랑해왔으며 소를 기둥처럼 믿어왔을 것이다.

어릴 때 농촌에 살면서 소를 많이 보아왔는데 그후 도시로 와서 살면서 소라는 형상이 머리 속에서 많이 희미해짐을 느끼다가 올해는 신축년이라서 친구지간에 주고받는 덕담에도, 잡지에도 소에 관한 글을 자주 보게 되면서 문득 이전에 보아오던 소사랑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삼십대일 때 일이다. 그때 옆집에서 소를 기르고 있었다. 아들며느리와 한집에서 살고 있는 최아바이는 매일 새벽 일어나서 먼저 발길이 가는 곳이 바로 외양간이였다. 신새벽에 외양간을 말끔히 청소하고 비자루로 소등을 쓸어주고… 그러고 나서야 아침을 드셨다. 아침식사 후에 해도 되는 일인데 소똥냄새때문에 밥맛이 있었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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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해 봄 저녁녘에 밖에서 떠들어대는 소리가 요란해서 밖으로 나갔다. 그날 소에 발구를 메워서 나무하러 산에 간 아들이 절뚝거리며 걷는 소만 몰고 집에 돌아왔다. 내리막길에서 발구가 번져져서 소가 발목을 상해서 그런대로 소만 몰고 온 것이였다. 그런데 부자간에 대뜸 싸움이 일어났다.

“너 나무를 얼마나 많이 실었으면 소가 이 정도로 되였어? 말 못하는 소라고 그렇게 아낄줄도 모르는 자식이구나.”

아버지의 노발대발에 아들은 억울한지 눈물이 글썽한채로 대꾸했다.

“아버지, 모르고 하는 소리꾸마.  나무 석대밖에 안 실었습꾸마.”

아들은 물론 기분이 좋을리 없었다. 아침에 누룽지 한웅큼 가지고 산에 가서 높은 산발을 오르내리며 통나무를 찍어서 끌어내리느라고 숱한 땀 흘렸고 온몸이 녹초가 된 상황인데 욕을 먹다니?

“그럼 래일부터 아버지 나무합소.”

“너 소를 다치게 해놓고는 무슨 대꾸질이야? 저 소가 얼마나 아파하는지 아느냐?”

그들의 부자간의 다툼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몇몇 모여들자 아들은 창피하다면서 집으로 들어가버렸다.

그 이튿날 최아바이는 많은 시간을 소 곁에서 지냈다. 측은한 눈길로 소를 멍하니 쳐다보기도 했고 또 상한 다리를 주물기도 하면서 자꾸 이렇게 곱씹었다.

“에그 아파도 말 못하고… 참 불쌍하기도 하구나.”

소는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기리도하듯 다리를 주무를 때면 커다란 두 눈을 껌뻑거렸다. 최아바이는 소에게 찰떡도 자주 쳐서 먹이였다. 찰떡을 한줌씩 떼서는 물에 찍은후 소입에 넣어주었는데 그럴때면 소는 맛나게 새김질하였다. 그 세월에 사람도 흔하게 먹지 못하는 찰떡을 말 못하는 동물에게 준다는 것은 웬간한 사랑으로는 해내기 어려운 일이였다. 그때 배급을 타 먹다보니 입쌀도 흔치 않게 먹는 나는 소가 아무리 중한들 찰떡까지 먹일 필요가 있을가 라고 생각한적이 많았다.

어느날 최아바이의 일곱살 난 손자가 동네 조무래기들을 데리고 소를 향해 돌멩이 뿌리기를 하였다.

“명호야. 너 소귀를 명중하고 광호는 소꼬리를 명중해봐.”

최아바이 손자가 이렇게 소리치자 애들이 돌멩이를 뿌리기 시작했다.

“이제 너 할아버지 아시면 너 혼빵 나니까 어서 다른데 가서 놀아라.”

옆에서 지켜보던 내가 이렇게 타일렀다. 그 시각 나도 웬 일인지 소에 대한 동정심이 우뚝 살아났다. 개는 돌멩이에 얻어맞으면 “깽깽”하고 소리치면서 피하고 돼지도 “꿀꿀”하고 소리치며 저만큼 피할 것이다. 그런데 소는 그 자리에 못 박은듯 서있기만 했다. 돌멩이가 몸에 맞으면 눈만 껌뻑할뿐이였다. 정말 우직하고 버티는 능력이 강하고 한없이 태평스러운 동물이였다.

나의 예측은 맞았다. 어데가서 일 보고 돌아오면 먼저 외양간부터 들리시는 최아바이의 시야에 애들의 장난이 안겨들었다.

“너희들 왜서 이러는거야? 응?”

외양간 옆에 쌓여있는 나무가리에서 몽둥이를 쥔 최아바이가 몽둥이를 막 휘두르면 애들을 쫓았다. 애들이 다 달아나고 남은건 손자뿐이였는데 몽둥이가 손자의 엉덩이에 떨어졌다.

“와-”하고 우는 소리에 할머니가 나오더니 일의 자초지종을 알고는 야단쳤다.

“그까짓 소가 뭐 그리 대단해서 령감이 이 야단이요? 손자보다 소가 더 좋으면 오늘 저녁부터 외양간에서 자구려.”

기고만장하는 할머니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자를 노려보는 최아바이의 얼굴에는 노기가 가득했다.

“세상에 저런 령감은 처음 본단 말이요. 내 원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가네.”

손자를 금이야 옥이야 하며 키우는 할머니는 손자가 맞는 것이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후 소고기장사군이 와서 인제는 소가 나이도 있고 또 상했는데 팔라고 했지만 최아바이는 안 팔겠다고 딱 잡아뗐다. 물론 최아바이집 식구들이 모두 팔아버리는 것에 대찬동했다.

“너희들 모두 인간이냐? 어떨 때는 소를 실컷 부려먹고는 인제와서 좀 상했다고 없애려 하는구나. 소는 농가의 밑천이라고 그래 밑천을 다 부려먹을 예산이냐? 그러면 망한다 망해.”

마을에서 평양고집으로 이름난 최아바이를 누가 이기랴?

그렇게 일년간 살다가 다른데로 이사간 후로 다시는 소를 애지중지 여기는 최아바이의 모습을 못 보았다.

인제는 최아바이도 저 세상으로 갔겠건만 소를 그처럼 사랑해오던 일은 하나의 감동적인 이야기로 이 세상에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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