黑龙江日报朝文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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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해 몽 - 리홍철

2021-12-12 15: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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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니 몸은 전과 다르게 너무나 가뿐하다.

머리도 한결 맑아진 것 같고 기분도 이 아침을 닮은 듯 상쾌하다. 창문을 열고 바라보니 아파트단지 안의 오얏꽃 향기가 더욱 짙어진 것 같고 하늘은 뚫린 듯이 파랗다.

폭설을 뒤집어쓴 듯한 오얏나무를 마구 흔들고 천진한 소년의 마음으로 두팔 벌려 하얗게 웃어보고 싶어진다.

-바보처럼 왜 매나네 웃어?

아침상을 차리던 안해가 늘 그러했듯이 0℃의 표정이 보지 않고도 등뒤에서 느껴졌다.

안해는 분명 모를 것이다. 내가 간밤에 어떤 꿈을 꾸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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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그녀를 보았다.

꿈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뽀송한 얼굴에 솜털이 귀여운 녀자애였지만 분명히 내 소학교 동창생이라고 했다. 그러고보니 또 동창생이 맞는거 같기도 했다.

동창중에 이쁜 녀자애가 많지 않아서 기억에 남는 친구였으니깐.

-근데 너 늙지 않았네? 나이 오십에 아직도 애기 같네?

-히히~ 너도 안 늙었어. 니가 늙었다고 생각하니 늙은거지 내 보기에는 아직도 안 늙었어.

그녀의 해맑은 웃음이 오얏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너 결혼했어?

-아니, 널 기다렸어…

뭐야? 난 결혼하고 아이 둘까지 있는 몸인데 내가 결혼한 걸 몰랐단 말인가?

근데 속이고 싶었다. 결혼했다는 말을 꺼내기가 웬지 모르게 꺼려졌다.

그녀의 이름은 매(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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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교 3학년까지 다니고 나는 공부를 못해서 한학년 내려 앉고 그 애는 그대로 쭉 올라가다나니 늘 나보다 한학년 우였다. 그렇게 3년인가 같이 한교실에서 공부했으나 공부도 못하고 힘도 없는 나같은 아이는 그 애 눈에도 별로였던 건지 나는 거의 대화했던 기억조차 남아있지를 않다.

근데 그런 공주같던 애가 나를 기다렸다니…

너무나 달콤했다. 추억에 가물거리던 따발사탕의 감미로움이 입가에 새록하게 감돌고 있음을 느꼈다.

-진짜 내가 안 늙었어?

-그럼, 많이 성숙해보여…

-허이구~ 왜 이리 령감이 다 됐어… 라던 마누라와 상반되는 말에 쭉 길게 허리가 펴지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아동갠뚝(장인강뚝)을 걸을가?

살며시 잡는 그녀의 손길이 참으로 포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마리의 작은 병아리를 잡은 느낌이였다.

-나 너 결혼한거 알고 있어…

-엉? 근데 왜 모르는것처럼 했어?

정면을 응시하며 걷는 그녀의 물음은 차지도 덥지도 않고 미지근했다.

-아… 그건…

그녀는 머리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눈이 웃고 있었다. 그리고 하얀 이빨을 들어내며 입도 결국엔 웃었다.

-혹시 우리 바람피우는 거니?

묻는 말에는 대답없이 생뚱맞은 그녀의 질문이 이어졌다.

-바람?

-바람은 마흔까지만 피우라 했어… 우리 나이 오십이니 이젠 바람도 물 건너 간 것 같네…

그녀가 조곤한 소리로 말했다.

-사실 나도 결혼했어. 근데 남편이 날 믿지 못하겠대…

-왜?

-내가 하도 이뻐서… ㅎㅎㅎㅎ

그럴만도 할 것 같았다. 저렇게 이쁜데 그집 남편은 어데로 맘놓고 다닐가? 주인없는 꽃이 이쁘면 아무나 꺾자고 달려들 것인데…

문득 나는 지금 집에서 분단장 곱게 하고 출근 준비를 하는 안해의 모습이 떠올랐다.

믿어야 할가? 믿지 말아야 할가?

남들은 분명 안해가 이쁘다고 했다. 때론 내 눈에도 이쁘게 보였다. 내 눈에 이쁘게 보일 때 남들 눈에는 더 이쁘게 보이지 않을가? 자식은 자기 자식이 곱고 마누라는 남의 마누라가 곱다는 말이 있는데…

속이 덜컹해났다.

몇달씩 집을 비우고 외지 출장 다닌 경우가 비일비재였던 나인지라 새삼 안해가 의심스러워졌다. 녀자 나이 사십대에 들어서면 뭐같다고 하던데… 혹시…

-녀자는 이 세상에서 한사람만 믿어. 엄마만… 세상에 마누라는 바뀔수 있어도 엄마는 죽을 때까지 바뀌지 않아. 세상에 마누라는 너를 배신할 수 있어도 엄마는 너를 배신하지 않아…

-내가 너하구 지금 같이 있는 것도 사실은 바람이야. 남편 모르게 외간 남자와 만나니깐…

… … …

지난밤에 꾼 꿈의 대략적인 줄거리다. 너무 생생하게 기억난다. 대체로 꿈은 꾸고 일어나면 거의 대부분 까먹 건만 지난밤 꿈은 너무나 생동하다. 드라마의 한장면 같았다.

밥상앞에 다가서며 주방에서 돌아치는 안해를 흘끔 건너다 보았다.

대충 묶은 꽁지머리, 빨간색 ‘쇠고기 다시다’ 로고가 붙은 앞치마… 분명 내 안해가 맞다.

나는 후~ 한숨을 내쉬였다.

-젠장 다행이네.

꽃은 꽃이되 남한테 꺾일 정도로 이쁜 꽃은 아닌게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난밤 꿈을 달콤하게 되새기며 나는 저도 몰래 입가에 얇은 미소가 지어졌다.

-당신 오늘 이상하다? 아침부터 실실거리며 웃는 것이… 혹시 무슨 좋은 꿈 꿨어?

-ㅎㅎㅎ 응. 참 기분좋은 꿈 꿨어.

-녀자꿈 꿨네…

지나가는 말 같지만 귀신같이 안다. 참으로 령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이렇다.

내가 한마디를 말하면 뒤마디가 무슨 말인지 내 속을 동집게처럼 집어낸다. 거의 80% 이상은 정확히 맞춘다.

-꿈에 그 녀자랑 데이트 했어? 아니면 그 이상?

나는 흘끔 안해의 눈치를 살폈다. 눈가에 약간의 살기가 보였다. 질투?

-풉! 풉!

얼결에 입새를 비집은 허구푼 웃음이 속앓이하는 강아지 방귀같은 바람소리를 뿜었다.

-당신 질투하는 거야? 꿈속에 만났던 녀자를?

-질투? 흥! 내가 아니면 장가도 못갈 당신이였는데 내가 질투를 해? 소말뚝에 꽃이 피는 소리하고 있네…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속의 매는 나를 본체만체 하였지만 마누라는 나한테 시집을 와주었고 애를 둘이나 낳아주었다. 참으로 대공무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감개무량해짐을 심장이 아프게 느꼈다. 허이구~

-고맙소이다~ 시집을 와 주셔서…사실은 엊저녁에 꿈에 소학교 3학년때 녀자 동창을 만났었지…

근데 아직도 늙지 않고 고대로 이쁘더구만… 결혼했었는데 리혼한 거 같아…

아닌 것처럼 말하는 내 말에 안해는 어처구니 없다는 식의 눈길로 나를 올롱히 쳐다본다.

-아이고~ 늙은 소 콩밭으로 간다더니… 소학교 3학년 때 동창의 얼굴이 기억이 날 정도면 참 많이도 좋아했겠소~

-나는 좋아했는데 그 애는 공부도 잘하고 이쁘기도 해서 날 본척도 안했지. 되려 내가 그 애 오빠한테 얻어 맞아서 코피까지 터졌다니깐.

-그 애 오빠한테는 왜 맞았는데?

맞아서 코피까지 터졌다는 소리에 안해는 이상하게 눈에 생기가 돈다.

-왜긴 왜겠어? 어릴 때는 자기가 좋아하는 녀자애를 괴롭히는게 정상이였으니깐… 내가 그 애를 괴롭혔지… 수업시간에 그 애 뒤잔등에 똥덩어리를 그렸어…

-하하하~ 맞아도 싸네~ 좋아하는 녀자애 등에 똥덩어리라… 

한결 기분이 풀린 안해의 모습에 나도 다소 시름이 놓였다.

-근데 왜 종래로 기억에 떠올려 본적 없었던 40년 전의 그 애를 꿈에서 보았을가? 당신이 좀 해몽해 보시지.

-이 사람이 미쳤나? 내가 교회 다니는걸 몰라? 나보구 꿈해몽 하라고? 사탄이 따로 없네…

-알았어, 나절로 해몽해볼게…

언젠가 책에서 본 구절이 생각났다. 길몽과 흉몽의 구분은 꿈을 꿀 당시 기분에 따라 갈린다고 했다. 꿈에 살인을 하든 벼랑에서 떨어지든 뭘 보든 기분이 좋으면 길몽이고 기분이 찝찝하면 흉몽이라고 했다. 그러니 나는 분명 길몽을 꾼 것이다.

이쁜 녀자와 함께 데이트를 하였으니, 아니 꿈에 행복한 ‘바람’을 피웠으니 오늘 하루는 참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다.

아참! 혹시 매도 40년동안 꿈에 나를 본 적은 없을가? 만에 하나라도 꿈에 나를 보았다면 그날은 참으로 재수도 없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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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물중에 농사일을 돕는 동물을 말하라 하면 누구나 다 소라고 할 것이다. 소는 농사일을 돕는 고마운 짐승이며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는 동물이기도 하다. 소한테는 인내력과 성실함 그리고 근면한 정신이 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그처럼 소를 아끼고 사랑해왔으며 소를 기둥처럼 믿어왔을 것이다. 어릴 때 농촌에 살면서 소를 많이 보아왔는데 그후 도시로 와서 살면서 소라는 형상이 머리 속에서 많이 희미해짐을 느끼다가 올해는 신축년이라서 친구지간에 주고받는 덕담에도, 잡지에도 소에 관한 글을 자주 보게 되면서 문득 이전에 보아오던 소사랑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삼십대일 때 일이다. 그때 옆집에서 소를 기르고 있었다. 아들며느리와 한집에서 살고 있는 최아바이는 매일 새벽 일어나서 먼저 발길이 가는 곳이 바로 외양간이였다. 신새벽에 외양간을 말끔히 청소하고 비자루로 소등을 쓸어주고… 그러고 나서야 아침을 드셨다. 아침식사 후에 해도 되는 일인데 소똥냄새때문에 밥맛이 있었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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