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가을은 수많은 문인들의 붓끝에서 싫증나도록 묘사되여왔다. 가을추(秋)를 보면禾는 곡식화로서 벼를 가리키고火는 불화로서 뜨거움을 말하는데 뜨거운 해살에 익은 벼를 거두는 계절임을 나타낸다. 기상학적으로는 보통9~11월을 가을이라고 하나 절기상으로는 립추부터 립동 사이를 일컫는다.9월 중순 이후 대체로 가을비가 기본상 끝나고 맑은 날씨가 계속되고 강수량이 줄어들고 습도도 낮아지며 산야는 단풍과 황금빛의 오곡으로 뒤덮이게 된다. 늦가을이 되면 낮의 길이와 일조 시간이 짧아지고 기온이 차차 내려가며 아침저녁으로 제법 귀찮을 정도로 썰렁해난다. 말그대로 썰렁한 가을 기분을 자아낸다.
가을철엔 추석과 같은 큰 명절이 끼여 이채를 돋구는가 하면 봄철부터 다사했던 농사일을 한단락 끝내고 좋은 날씨를 택하여 축구경기, 륙상경기, 씨름, 그네 등 민속색채가 다분한 경기를 벌여 다분한 농사일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보기도 한다. 가을은 농사의 결실을 보는 수확기면서 추수 감사의 민속 행사가 많은 계절이다. 그중에서도 큰 명절인 추석을 꼽을 수 있다. 추석이 오면 멀고먼 지방에 흩어져 살던 가족성원이나 가까운 친척들이 모여 조상을 모신 산소를 찾아 성묘도 하고 오손도손 모여앉아 명절음식을 먹으면서 그립던 정을 나누기도 하는 등 민속행사가 많다.
일년 사계절에서 봄은 약동과 소생의 계절이요, 여름은 열렬하고 왕성함을 상징하며 가을은 풍요로움을 상징한다고들 말한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가을은 수확의 계절인만큼 풍요로움은 말할 것 없다. 주로 농사일을 중심으로 계절을 말하고 있기때문에 목화밭의 풍경을 백설같다고 한다든지 고추를 널어 말리는 모습이 산호 같다고 비유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문인들의 작품에서 가을 묘사에 등장하는 것은 주로 국화, 목화, 단풍, 락엽 등 식물과 하늘을 가로 지르는 기러기, 귀뚜라미 등 동물 이미지 그리고 나무가지에 걸린 달, 바람, 비, 하늘과 같은 자연현상이나 추석과 같은 세시풍속이나 바쁜 농사일이 등장하는 소재들이다. 가을의 주된 정서는 서리를 맞아가며 피는 국화나 단풍의 풍경에서 그 조화롭고 아름다운 빛갈의 이미지를 제시했지만 그 아름다움의 어딘가에는 비애감을 조장하는 이미지도 엿보인다. 기러기나 귀뚜라미의 경우 날아가는 모습이나 우는 소리를 고독과 비애를 드러내는 소재로 써먹는 경우가 많다. 가을달은 네계절 중 가장 맑고 청량한 감을 주며 때맞춰 부는 바람도 소슬하여 청량감을 더해준다. 이 때에 내리는 비도 더욱 처연한 느낌을 갖게 하는데 이런 비애의 분위기가 초목의 잎이 시들어 떨어지는 가을이 가져다주는 비애감을 형성한다. 이와같은 특성은 단풍을 소재로 한 경우에서도 나타난다.“가을이 장차 돌아오면 나무잎은 모두 단풍이 들고 세월이 가면 사람의 머리가 백발이 된다”는 것은 단풍을 통하여 늙음의 슬픔을 표현한 것이다. 단풍의 다른한 측면은 진다는 속성때문에 슬픔을 환기시키는 이미지가 된다.
그 밖에도 기러기, 귀뚜라미 등과 같은 동물의 이미지가 가을달과 어울려서 외로움을 나타내는 소재가 되고 여기에 싸늘한 바람까지 합하여 차가운 비와 함께 적막감과 고적감을 짙게 나타내주고 있다. 실은 자연현상 자체에는 그 어떤 정서나 감정 이를테면 비애, 고독, 적막, 기쁨, 즐거움, 희망, 절망따위의 정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 현상에 인간의 각종 감정을 부여하고 자신을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속에 빠져뜨린 것은 무엇때문일가? 이 해답은 인간자체의 마음가짐이 어떠했는가에 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여나서 자연과 더불어 숨쉬며 살아왔다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했었고 그래서 감사함을 깨우쳐야 한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늘 감사하다는 태도로 사는 사람에게는 행운이 찾아오는 반대로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불만족을 일삼는 사람에게는 불운이 찾아든다. 성공해서 행복하기보다 행복해서 성공하기를 가르치는 게 행운의 비밀이다. 삶은 자기에게 달려있다. 마음가짐이 어떠한가 하는 자세가 다름에 따라 객관사물의 이미지가 다르게 안겨온다. 가령 당신이 해를 등지고 섰다면 해는 당신의 등뒤를 비출 것이고 자세를 바꿔 돌아섰다면 태양은 당신의 가슴을 따스하게 비춰주는 것과도 같이.
봄에 새잎 돋아나고 가을에 락엽으로 지는 것, 사람은 태여나서 종당에는 한줌의 흙으로 남는 것, 이것은 어떤 권한이나 힘으로도 막아내지 못하는 자연의 섭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섭리에서 벗어난 존재인 듯 으시댄다던가 발버둥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가 못된다. 공수래 공수거(空手来,空手去)이거늘 이 섭리를 터득하고 자연의 섭리에 자기를 고스란히 내맡기고 온갖 잡생각을 깨끗이 비우고 순수한 락엽으로 남겠다는 마음가짐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가 싶다. 굳이 쓸쓸함을 보여주는 가을 소재들을 붙잡고 란리 번져봤자 자연의 섭리는 변하지 않을테니까. 가을은 말없이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