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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친구처럼 지내려는 엄마들의 최악의 실수

2021-11-20 10: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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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전 산부인과에서 딸아이라는 힌트를 얻었다. 신기한 마음에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니 모두다 나를 축하해주었다.

“엄마 마음 알아주는 건 딸밖에 없대요.”

“친구처럼 착한 딸이 최고지.”

처음엔 그런 축하의 말을 듣고 기뻤지만 어느 순간 묘하게 마음에 거슬렸다. 그 순간 엄마의 마음에 들기 위해 무던히 애썼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던 것이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를 기쁘게 하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처음엔 나도 기뻤다. 엄마가 나에게 웃어보이면 엄마를 기쁘게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였다. 그런데 점점 자라면서 엄마와의 관계가 나에게‘답답함’과‘집착’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네 아빠가 뭐라는지 알아? 어휴~ 그래도 내가 너 덕분에 산다”

엄마는 항상 이렇게 넉두리를 늘여놓았다. 동시에 나는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와 어떻게 해도 인정받지 못할 거라는 결핍을 함께 갖게 되였다.

“엄마한테 듣기 싫다고 말해도 될가? 엄마랑 싸우는 건 싫은데...”

엄마는 결핍을 무기로 딸이 영원히 자신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내가 널 위해서 이렇게 참고 살았는데, 하소연 좀 듣는 게 그렇게 힘드니?”

예전처럼 딸에게 물리적인 희생과 양보를 강요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지만 나의 경우처럼 엄마의 감정 창구 역할을 하는 딸은 여전히 많다.

더 큰 문제는 그러한 모녀 관계가 대물림되기 쉽다는 사실이다.

이 대물림을 끊기 위해선 여전히 내 삶에 드리워 있는 엄마의 그늘을 벗어나야 한다.

우선 사소한 것부터 자기 뜻대로 해봐야 한다. 지금까지 나를 옭아매는 엄마의 말이 있다면 아주 사소한 말이라도 좋으니 과함하게 그 말을‘거역’해본다. 사소한 변화에서부터 독립이 시작된다.

다음으로 지금까지 책임지려고 끙끙댔던 엄마의 인생을 내려놓을 용기를 내라. 많은 딸이 엄마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축내서라도 들어주려 한다.

엄마 인생은 엄마의 책임이다. 이토록 간단한 진리를 리해하면 엄마도 딸도 한결 더 편안해질 수 있다.

/책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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